대화가 필요해.

(웹소설)

by WineofMuse

"엄마"

"나 다른 남자가 좋아진다?"

"응?"

"김서방 말고?"

"딴 남자?"

"뭣하러..."


시금치를 다듬던 엄마의 미간이 약간은 놀란 듯 찡그려졌다.

봄이 다가왔지만 아직은 훈풍이 불러오긴 이르다.


"참 요즘 것들은 좋아."

"속에 있는 이야기 다 하고 살고. 여자라고 뭐 ... 허긴 ... 시대가 ..."

"제기럴 나 때는 이런 건 꿈도 ... 에잇"


부화가 치미는지 엄마는 다듬던 시금치를 내려친다.


"집에 있는 것도 건사 몬하면서 새 놈 타령이여."

"복도 많네 둘씩이나."

"너거 아부지 피가 어디 안가나벼."


역시 엄마다.

자식의 가장 아픈 폐부가 어딘지 정확히 알고 몇 마디 안 되는 초식으로 미정의 말문을 닫아버렸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같아."

"데리고 살아봐야 술 먹고 오입질하고 그게 일인 것들인데."


엄마의 입담이 이 정도일 줄이야.

미정은 어질어질하다.


"그놈도 다정하게 굴지?"

"지 간은 안 준다디?"

"밥도 사주고 술도 사주고 어."

"노래도 불러주고, 편지도 하고."

"엄마 책도."

"책?"


근처에 빗자루가 없으니 손바닥으로 미정의 등을 친다.


- 퍽

"에라이 정신 차려 이년아!"


미정은 미주알고주알 엄마에게 모든 걸 털어놓는다.

장난 같은 진심에 엄마도 이걸 믿어 말아하는 눈치다.


"잘해."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속 깊은 딸의 진심이 어디까지인지 엄마는 안다.

딸이 나에게 말한다는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


인지는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생각에 잠겨있다.

미정 생각이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들면 사람의 외면보다 내면을 훨씬 많이 보게 된다.

습관이나 말투, 배려, 마인드셋, 가치관 등 눈에 빤히 보이는 것들로 사람을 평가하곤 한다.

평가라는 단어가 못내 거슬리긴 하지만 빼놓을 수는 없는 표현이긴 하다.


인지는 받아들이는 정보가 너무 많고 생각과 잡념이 많은 사람이다.

가급적 많은 사람을 만나길 꺼려하는 성격도 그에 따른 연유임이 크다.


화장, 톤, 립스틱 색깔

귀걸이, 반지, 네일, 큐빅

손톱, 발톱, 손목, 머리카락

남편을 어떻게 대하는지.

아이를 어떻게 대하는지.

음식을 어떻게 대하는지.

대화의 태도가 어떠한지.

기분을 어떻게 표현하고 눈빛은 어떠한지.

외형은 눈에 다분히 보이는 특성이기에 나열하고 분해해서 직관적으로 늘어놓기 쉽다.

기억해둔 외형은 나중을 위해서도 아주 편리하다.

미정은 안 좋은 일이 있거나 자존감을 고양시켜야 하는 타이밍이 오면 액세서리가 늘어나는 것 같다.


내면은 좀 다른 이야기이다.

추리 혹은 유추해야 한다.

한길 사람 속이라 알래야 알 수도 없다.

오래 같이 살아온 부부도 서로의 속은 모른다.

말해도 모른다.

말하지 않아서 더 모른다.


사람이 참 밝아.

진취적이고 힘든 건 있어도 그늘이 없어.

대담해.

어찌 그런 생각을 하고 여과 없이 막힘없이 뱉어내는지 신기해.

점잔 빼는 주변의 누군가를 대변하는 습관일까.

답답한 건 못 참아.

사우나 싫어하지.

혼자는 잘 살아도 사람 없이는 못 살아.

생각할 수록 뒤로 갈수록 자기 소개하는 시간 같은 인지였다.


미정에게서 뚜렷한 그늘을 발견하지 못한 건 인지가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기분이 들게끔 했다.

여자들은 그런 미정에게서 거리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남자들도 몇 번은 편해도 거리를 둘 것 같은데.

강한 성격? 아냐. 그런 것과는 거리가 좀 있어.

군림? 아니고

지배? 아니야.

미정은 대체적으로 같거나 높은 위치를 선점하길 좋아하는 성격 같다.

주도권을 의식적으로 가져가고 높은 자존감을 드러내지.

의식적으로 자존감을 드러내는 것은 건강한 자존감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인지는 미정을 인수분해하듯 나열했지만 가장 절실한 건 납득이었다.

인지는 미정을 생각하고 떠올릴수록 미정이 좋아졌다.


"하긴 뭘 알아... 사람 좋은데 이유가 있나."


지금의 상황은 마치 게임 시뮬레이션을 통해 대상을 되돌아볼 수 있는 것 같았다.

게임 '심즈'의 완성형이었다.


대부분 수컷들이 가지는 정복욕과는 성격적으로 그 궤가 달랐다.

남성의 정복욕은 올라타는 것에 기반하는 심리적 성향이다.

미정이 남성을 대하는 지향점이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수동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매우 자유롭거나 파격적이진 않다.

발목을 잡는 과거 혹은 현재의 족쇄가 있으나 그것이 어디서 기인한 건지 알지 못했다.

남편, 자식, 부모 중의 하나이거나 셋다 이거나.

이건 특별할 일이 아니었다.

인지는 부모라는 숙제가 애초에 사라졌다.

보통의 사람들이 누리는 그러한 인과가 조금은 생소하게 느껴졌다.


힘겨루기? 의미 없다.

이길 이유도 없고 누가 누구를 끌어갈 것도 아니다.

보통의 남녀 관계가 그러하듯 인지는 대상이 원하는 바가 궁극적으로 무엇인지 설정을 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굳이 서로 무례를 범할 범주의 것은 피하는 것이 좋았다.

젊은 날의 우리야 몸으로 겪으며 서로를 알아가고 다투고 싸우며 커갔다.

지금은 다르다.


남자는 혼자 고심하고 여자는 대화를 통해 풀어낸다.


***


가영은 휴대폰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통화가 좋을까. 톡이 좋을까."


소심한 가영은 어느 쪽이든 선택을 해야 했다.

가영의 선택은 의외로 대담했다.


"언니 시간 되세요? 할 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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