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그냥 먹일걸

by WineofMuse

설날 저녁

여독과 피곤함이 누적되어

다분히 귀찮았다.

대충 지어먹을 요량에

3분 카레와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3색 나물을

대충 차리고 아쉬운 듯하여 닭가슴살도

데워 토핑으로 얹었다.


매 끼니마다 거의 한 시간씩 전쟁을 치르는 터라

예민한 때가 간혹 마주칠라치면

항상 부모가 져주곤 했다.

아직 아기니깐...



'나 카레 싫은데...'


'싫으면 먹지 마!'


탁!


그깟 버릇이 무어라고

카레가 싫다는 딸아이의 밥그릇을

매정하게 치워버렸다.

긴 연휴 동안 매 끼니마다 들어온 불평과 투정에

날이 한껏 서 짜증스러웠던 탓도 있으리라.


밥그릇을 치우니 그제야 울며 불며

난리법석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단호해지리라.


'정말 안 줄 거야.'


치워둔 밥을

싱크대 옆으로 한번 더 밀쳐두었다.

아빠의 확고함에 소파에 파묻혀 울던 아이는

이내 늦은 시간이라 양치를 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싱숭생숭한 저녁 시간이 지나고

양치하고 누운 지가 한참만에

딸아이가 혼자 자기 무섭다며

슬그머니

옆에 눕는다.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오는 건가..

내심 마음은 쓰여도

엄마와 자러들어가는 뒷모습이

평소의 기분을 찾은듯하다.


다음날 아침

역시나 밥상 앞에서 딴짓하며

수다 떠느라 부산스럽다.

딸아이의 요란한 인사를 뒤로하고

매장에 나와있다 엄마의 전언에 그만

눈물이 드르륵 맺혀 아려온다.


밥 안 줄까 봐

아무 말도 안 하고 오도카니 앉아 있더라는

말에

순간 30여 년 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 찾아 무작정 가출 후 1주일간

태화강에 오도카니 앉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다

바닥에 눌어붙은 사탕을 떼어먹었던

그 시간이 떠올랐다.

내 아이들만은 굶기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독하게도 살아왔는데 결국은 한 번은 굶기게 되었구나.

무슨 연유이든

어쨌거나 안 먹인 한 끼는 평생 가슴속에 남게 생겼다.

미워도 그냥 먹일걸...


딸아이의 그 작은 등짝이

그 옛날 울산 태화강변의

그 꼬마의

오래 굶은 등짝처럼

너무 작아 보이는 거 같아

오랜만에 펑펑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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