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한 지 3주도 채 안되어 가게를 1주일씩 닫으니 사람들은 금세 가게를 잊어버렸다.
주말에는 아이들과 같이하는 가족단위의 식사 방문객 비중이 높았다.
그럭저럭 매출이 나아지리라 생각했지만 날씨가 추워질수록 매출은 널뛰기를 시작했다.
겨울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10월 말에야 합류한다는 양반이 12월 말에야 합류했다. 우유부단함에 화가 났다.
하지만 앞으로 1년간 처형과 내가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에 비할바는 아니었다.
나는 사람들이 우려하던 가장 큰 걱정과 직면해야 했다.
"가족과는 일하지 말라"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와이프도 모자라 처형과 함께 일해보자고 한 그때의 나를 살해하고 싶다.
가족 구성원 어느 누군가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일이란.
항상 구성원 누군가의 농밀한 내면을 터지게끔 만들고 본성을 바닥에 늘어놓게 한다.
처형이라서가 아니다.
와이프라서가 아니다.
그저 일이 사람을 그렇게 만든 거다.
나도 분명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좁아터진 공간에서 같은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으면 항상 나는 두 사람에게 두들겨 맞았다.
당시만 해도 같은 가게에만 들러도 코로나가 걸릴 것 같이 뉴스에서 떠들어 댔다.
매일 아침마다 문자메시지로 환자 00번이 어디 어디를 들렀다며 살생부를 돌렸다.
방문하지도 않은 매장에 코로나 환자가 다녀갔다며 마녀사냥이 벌어져서 뉴스에 나기도 하고
해당 매장이 큰 피해를 입기도 했다.
우리처럼 홀이 좁고 테이블이 많이 않은 매장은 한 테이블 건너 한 테이블을 띄운다면
사실상 받을 수 있는 테이블이 1개의 테이블 밖에 되지 않았다.
손님은 4인인데 일하는 사람이 3명인 웃기고 아픈 상황이 몇 달이고 이어졌다.
추운 날씨와 함께 하얀 눈이 펑펑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