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행운은 결국 사람이었다.

by WineofMuse

누가 이딴 캐릭터를 골랐냐?

아마 '지구 시뮬레이션'이라는 게임에서 디폴트 값으로 적정한 수준의 캐릭터를 생성해 주었다면

나의 캐릭터 타입은 소위 "개똥망캐"수준이라고 생각했었다.

(선천적인 병마를 가지고 태어나거나 죽음에 내몰린 사람들이 보기에는 다분히 배부른 소리라는 것을 잘 안다.)


자신을 불운하다고 규정하는 그 순간부터 부정적인 생각들은 본인의 가장 연약하고 약한 부분들을 깊숙이 찌르기 시작한다. 이래서 내가 가진 열등감은 그 뿌리와 역사가 사뭇 단단하다.

시니컬하고 날카롭고 차가웠으며 누구에게나 불손하고 예의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은 어떻게든 쏟아내야 직성이 풀렸고 잔인 잔혹한 생각들로 머릿속은 항상 번뇌로 가득했었다.


그 처절한 발버둥도 나름의 원동력였고 흉폭한 에너지는 죽음 이외에는 꺼뜨릴 수 없는 불꽃처럼 한 인간을 발광하게 만들었다. 아주 나쁘고 사악한, 그늘진 어둠 쪽으로 말이다.


사람이 죽을 위기에 처하면 누구든 달라진다고 한다.

병실에서 이대로면 죽어도 뭐라 이의를 달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시점에 다다랐다.

오들오들 떨며 다시 이 병실을 나가게 된다면 다시 한번만 기회를 준다면 무슨 일이듯 하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인간은 그리 쉬이 변모하지 않는다. 공황이 찾아오고 주변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생존 시퀀스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를 감추고 군중 속으로 무리 속으로 은신해야 했다.

즉 이대로 살면 안 된다는 "계시"가 나를 강타하는 순간이었다.

지극히 평범하고 온순한 남자로 아이들 아빠로 그저 그런 사업체를 운영하는 아저씨로 나를 규정하기 시작했다. 그 변모의 장치가 글쓰기였다. 나는 이제 더 이상 특별할 게 없었다.


글을 썼다. 지독하게 많이 써 내려갔다. 내 안의 독이 서서히 빠져나가며 나의 영혼은 나아지기 시작했다.

건강이 다하고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고 나서야 나의 누추한 영혼의 몰골을 직시하게 된 것이다.


내일 당장 내가 죽는다면?


나의 소명은 무엇이며 나를 통해 세상에 나온 두 아이의 삶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당면한 의문에 답을 하기 위해 나는 처절한 싸움을 시작했다.

인간이 넘어야 하는 가장 큰 고비 바로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바로 그 지점부터 나의 관점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현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나와 나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어 생각해 보니 세상은 불운한 것들 투성이에서 행운이 가득한 것 투성이로 바뀌기 시작했다.

사람, 죽음으로부터 나를 끝끝내 건져내준 것은 결국 사람이었다.


1. 이혼 후 나는 할머니의 헌신과 사랑이 없었다면 아빠에게 맞아서 아마 사망했을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하나뿐인 손주를 지키기 위해 꼬부랑 허리를 펼새 없이 분주히 어디론가 일을 나가시고 밥을 해먹이셨다. 가장 후회되는 일 중 하나가 나의 가출로 인해 할머니의 임종도 마주하지 못하고 무덤도 어딨는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죽음의 문턱마다 나를 지켜주고 건져내 준 건 할머니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아직도 한다. 내가 온전히 살아남아 있다는 것은 작은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2. 인신매매 신문팔이 사무소에도 꽃은 피더라. 그곳의 대장은 박문수라는 깡패였다. 허리에 가스총을 차고 다녔었고 전국의 아이들을 모아 오전에 신문 30부 오후에 50부를 팔아서 그 수익을 몽땅 상납해야 하는 구조의 사업을 하고 있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88 올림픽 전까지 그러한 일들은 상당히 횡횡했었다. 당시 이름 모를 어떤 형이 하나 있었는데 그 형은 나를 이뻐라 했고 갖은 불합리와 폭력(성폭력)에서 나를 구해주었다. 여자아이가 잡혀온 적도 있었지만 그건 차마 글로 적지 못할 일이라 생략한다. 본드를 불거나 강가에서 개를 때려잡아 먹는 등의 일들이 눈앞에 펼쳐졌고 나는 본능적으로 이곳에 있다가는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탈출을 감행했다. 이곳에서의 일들은 정말 하드코어 그 자체라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고 입 밖으로 떨어지지도 않는다. 이때가 내 나이 9살, 학교를 다녔었다면 3학년 때의 일이었다.


3. 초등학교는 서울에 있는 고아원, 중고등학교 고아원은 부산에 있었다. 이곳의 생활도 지옥도였다.

폭력은 일상이었고 눈알이 터지고 이빨이 부러지거나 팔이나 다리가 부러지는 등의 사건은 비일비재했었다. 부모를 찾는 아이들의 울음소리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고 갓난아기 때부터 맡겨져 온 아이들이 다 내 친구였다. 서울에만 2,000명이 넘는 아이들이 그 고아원 한 곳에 있었고 당시 우리나라는 소위 고아 대국이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200명이 내려왔지만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은 70여 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곳에서 나는 평생의 친구들을 만났지만 지금은 몇몇 밖에는 연락을 하지 않는다. 그곳에선 그나마 내가 행복한 녀석 축에 속했다. 나는 부모가 누군지는 알고 할머니도 있었봤다. 천애고아들이 득시글한 곳에서 그 사실하나만으로도 나는 시기와 질투를 받곤 했었다. 그나마 키는 좀 컸지만 싸움도 못하고 비실거리느라 9년 내내 소위 찐따 그룹 중위권에서 맞고 사느라 선배들의 폭력을 피해 다니느라 바빴다.


4. 군대 대신 병역특례를 부랴부랴 신청했다. 인천의 한 공단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원치 않던 생활이라 그런지 나는 점점 나태의 구덩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던 중 pc게임을 접하게 되었고 디아블로와 스타크래프트에 중독되기 시작했다. 당시 다음 카페등이 성행하며 전국에 동호회 활동이 한창 활발하던 시기였다.

나는 스타크래프트 동호회에 가입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한 시절을 보냈다. 그때 만난 형이 또다시 한번 내 인생의 구원이 되어 주었다. 바른 사나이의 전형이었고 같은 회사를 다니는 동안 소시오패스로부터 나를 오랫동안 보호해 주었다.


5. 인라인 동호회에서 만난 그녀는 나보다 3살 연상이었다. 첫사랑이었고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한 트럭이겠지만 이 스토리는 자세히 적지 않는 편이 가정의 평화를 위해 유익할듯하다. 아무튼 그녀도 감사한 사람 중 하나이다.


6. 와이프와 아들딸


7. 자영업을 할 때 음료 제작문제로 아파트 단지의 어느 한 형님과 연이 닿게 되었다.

그 형수님께 와인을 처음 배우게 되었다. 글쓰기도 그분이 추천해 주셨다.

마흔이 넘어 인생의 전환기에 그 형과 형수님을 안만났다면 다른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을지 모른다.


죽을 것 같지만 죽지 않을 만큼의 행운이 악착같이 따랐고 그 중심에는 결국 사람이 있었다.

적재 적소 정말 절묘하고 신묘한 타이밍에 늘 정말 하늘이 내려준 사람이 하나씩 등장했다.

내 몸뚱아리만 성하다면 발가벗겨져 무인도에 떨궈놔도 살아남을 자신이 있다.

물리적인 고난이 인간을 얼마나 강하게 하는지 결코 알고 싶지 않다.

전쟁이 끝난 평화의 시대에 나는 대체 왜 혼자 이러고 있는지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이것이 인생이다 싶을 정도로 재밋다.


누군지 몰라도 게임하나 참 잘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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