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뱀 (The Flower Snake)

by 꽃돼지 후니

제1장: 거울 속의 여인

혜란은 고급 화장대 앞에 앉아 꼼꼼히 화장을 고쳤다. 50대 후반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여전히 아름다운 그녀의 눈에는 세월의 지혜와 야심이 깃들어 있었다. 168cm의 키에 균형 잡힌 몸매, 한때 미스코리아 지역구 출신다운 우아함이 여전했다.


"엄마, 또 나가요?"


딸 수진의 목소리에 혜란은 미소 지었다. "응, 엄마 일이 있어. 걱정하지 마."

현관문을 나서며 혜란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유명 약국 딸로 태어나 미인대회에서 이름을 날렸지만, 40대 초 이혼 후 두 아이의 싱글맘으로 살아온 세월... 그리고 지금은 서울 상류층 사회의 숨겨진 여왕이었다.


혜란은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겉으로는 언니가 하는 제조업 공동대표라는 타이틀을 가졌지만, 실상은 더 은밀한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녀의 진정한 수입원은 바로 남자들이었다.


제2장: 사냥의 시작

혜란은 또 다른 '사업 기회'를 위해 최고경영자과정에 등록했다. 과정 동기들과 네트워크 모임 중 가장 활성화된 것이 골프 모임이었고, 혜란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첫 골프 모임 날, 혜란은 온몸을 명품으로 치장하고 나타났다. 그녀의 등장에 많은 이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티잉 그라운드에 선 혜란은 우아하면서도 호쾌한 스윙으로 정확한 샷을 날렸다. 처음 만난 동기들은 그녀의 실력에 감탄했다."와, 혜란 씨. 골프를 정말 잘 치시네요!" 한 남성 CEO가 감탄했다.

혜란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죠."라운딩이 끝나고 저녁 식사 자리에서 혜란은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언니와 지방에서 제조업 공동대표를 맡고 있어요. 돌아온 싱글이자 두 아이를 키우면서 사업을 하고 있어요."그녀의 이야기에 많은 이들이 공감받은 듯했다. 혜란은 저녁 회식비를 계산했다."제가 오늘 좋은 분들과 인연을 맺어 기쁩니다. 작은 마음이지만 제가 대접하고 싶어요."이 한 번의 행동으로 혜란은 동기들 사이에서 '배포 있는 여성 CEO'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혜란보다 나이든 CEO들이 그녀에게 호감을 보이기 시작했다


다음 날, 골프 라운딩을 한 60대 보이는 김회장이 혜란에게 연락해왔다. "혜란씨, 오늘 저녁 시간 괜찮으세요? 사업 조언을 듣고 함께 할 수 있는 사업도 있을거 같아서요"혜란은 미소 지었다. 또 다른 '먹잇감'이 그물에 걸려들고 있었다. "그럼요, 좋아요. 8시에 만나요."그렇게 혜란은 새로운 사냥을 시작했다. 최고경영자과정은 그녀에게 완벽한 사냥터였다. 높은 사회적 지위, 풍부한 자금력을 가진 이들이 모인 이곳에서 혜란은 자신의 매력을 마음껏 발산했다


김회장과 만나는 호텔 로비에 들어서자 익숙한 눈빛들이 그녀를 향했다. 혜란은 우아하게 미소 지으며 걸어갔다.

"혜란 씨, 예기 많이 들었습니다," 김 회장이 다가왔다.

"어머, 김 회장님. 골프 라운딩은 어떠셨어요?" 혜란의 목소리에는 달콤한 관심이 묻어났다.

대화 중 혜란은 교묘하게 자신의 아들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아들이 얼마 전에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어요. 요즘 대형 로펌에서 일하느라 바빠요."

김 회장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아, 그렇군요. 아드님을 훌륭히 키우셨네요."

혜란은 미소 지었다. "네, 고생 끝에 드디어 열매를 맺었네요. 우리 딸도 대기업 인사팀에서 일하고 있어요. 두 아이 모두 자랑스럽답니다."

이런 대화를 통해 혜란은 자신이 성공적인 돌싱맘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이는 그녀가 단순한 '꽃뱀'이 아니라는 인상을 주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제3장: 유혹의 그물

김 회장과 만남에서 혜란은 자신의 전략을 더욱 정교하게 펼쳤다.

"김 회장님, 제 아들이 법대 다닐 때 항상 하던 말이 있어요. '엄마, 세상에 공짜는 없대요. 모든 거래는 공정해야 한대요.' 그 말을 들으면서 제가 사업하는 데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김 회장은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한 아드님을 두셨네요."

혜란은 미소 지었다. "네, 감사합니다. 제가 혼자 키웠지만,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준 게 정말 감사해요."

이런 대화를 통해 혜란은 자신의 도덕성과 가치관을 간접적으로 강조했다. 이는 남자들이 그녀를 더욱 신뢰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혜란과 김회장이 만난지 100일 되는 날 혜란은 고급 백화점에서 김 회장과 쇼핑을 즐기고 있었다.

"김 회장님, 이 시계 어떠세요? 당신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아요."

김 회장은 망설였다. "글쎄요... 좀 비싼 것 같은데."

혜란은 교묘하게 그를 설득했다. "인생은 짧아요. 가끔은 자신에게 선물할 줄도 알아야죠."

결국 김 회장의 카드로 고가의 시계를 구매하며 혜란은 속으로 미소 지었다.


"김 회장님, 제가 알고 있는 좋은 투자 건이 있어요. 관심 있으세요?" 혜란이 물었다.

그렇게 또 한 명의 '후원자'가 혜란의 그물에 걸려들었다.


제4장: 이중생활

집으로 돌아온 혜란은 피곤한 듯 소파에 몸을 기댔다.

"엄마, 괜찮아요?" 변호사가 된 아들 준호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혜란은 미소 지었다. "그래, 걱정 마. 엄마는 괜찮아. 오늘도 엄마 사업에 네 이야기가 큰 도움이 됐어."

준호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제 이야기요?"

혜란은 교묘하게 대답을 피했다. "그냥 네가 자랑스럽다는 이야기를 했지. 우리 아들이 큰 로펌의 변호사라니, 누가 듣더라도 대단하잖아."

준호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엄마, 혹시 법적으로 문제될 만한 일은 안 하고 계시죠?"

혜란은 순간 긴장했지만, 침착하게 대답했다. "준호야, 엄마를 믿어. 엄마는 항상 조심해."

준호는 뿌듯해하면서도 약간의 의구심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젊은 여성의 목소리였다. "언니, 저 민지예요. 소개해주신 분과 잘 되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혜란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녀의 '사업'은 번창하고 있었다. 젊은 여성들을 부유한 중년 남성들과 연결해주고, 그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 일. 혜란은 이것을 단순한 중개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변호사인 아들의 존재는 그녀에게 미묘한 불안감을 주었다.


제5장: 과거의 그림자

그날 밤, 혜란은 오랜만에 악몽을 꾸었다. 20년 전, 남편과 이혼하던 날의 기억이었다.

"당신은 독이야, 혜란아. 당신 곁에 있으면 모두가 망가져."

남편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혜란은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났다.

"아니야... 내가 한 일은 정당해. 나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야."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의문이 들었다. '정말 그럴까?'


제6장 위기의 그림자

혜란의 '사업'이 절정에 달했을 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그녀가 관여했던 외국계 증권사가 관리하는 주식가 폭락한 것이다

"언니, 큰일 났어요!" 민지의 다급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우리가 투자한 주식이 폭락했대요."혜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100여 명의 지인들에게 이 증권사를 소개하고 소개비를 받았었다. 심지어 자신의 명의로 된 휴대전화와 계좌까지 증권사에 맡길 정도로 신뢰하고 있었다.

."얼마나 떨어진 거야?" 혜란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증권사에서 1조원 가까이 투자했던 주식이... 거의 바닥을 쳤어요."혜란은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녀가 보유한 돈은 물론이고, 지인들에게 소개해 준 투자금 그리고 주담대로 대출받은 돈까지 모두 사라진 것이다.


며칠 후, 혜란은 거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TV를 바라보고 있었다."엄마, 괜찮아요?" 준호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혜란은 고개를 저었다. "준호야... 엄마가 큰 실수를 했어."그녀는 아들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주식 투자 실패로 인한 막대한 손실, 지인들과의 관계 악화, 그리고 엄청난 빚


준호는 충격에 빠졌지만, 냉정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엄마, 우선 법적인 문제부터 확인해봐야 할 것 같아요."혜란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아. 하지만 이미 늦었어. 엄마가 가진 아파트와 너네들 명의의 아파트까지 담보로 잡았어.. 급하게 아파트를 팔아 빚은 청산했지만... 지인들과의 관계는 회복하기 힘들 것 같아"

이 사건은 혜란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줬는지 깨달었다. 이는 그녀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변화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제7장: 양심의 가책

사건 이후, 혜란은 처음으로 자신의 행동에 대해 깊이 성찰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연결해준 관계들, 그로 인해 영향받은 가정들...

"엄마, 무슨 일 있어요?" 딸 수진이 물었다.

혜란은 한참을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수진아... 엄마가 해온 일들이... 옳은 일일까?"

수진은 놀란 눈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혜란이 해온 일의 실체를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다.

"엄마... 오빠한테 상담해봐요. 법적으로 문제없는지 확인해보는 게 어때요?"

혜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준호에겐 말하지 마. 아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제8장: 선택의 기로

혜란은 중대한 결정의 순간을 맞이했다. 지금까지 해온 '사업'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모든 것을 정리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인가?

그녀는 오랜 시간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

"이제 그만해야 할 때야..."

혜란은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들어 민지에게 연락했다. "민지야, 우리 이제 그만하자. 모든 걸 정리할 거야."


제9장: 새로운 시작

몇 달 후, 혜란은 공항에 서 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따뜻한 미소를 지닌 중년의 남자가 서 있었다.

"준비됐어요, 혜란 씨?" 남자가 부드럽게 물었다.

혜란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네, 정환 씨. 이제 정말 떠나는 건가요?"

정환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새로운 시작이에요. 우리 둘 다에게요."

혜란은 지난 몇 달을 회상했다. 그녀가 운영하던 '사업'을 완전히 접은 후, 우연히 만난 정환은 그녀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사업가로 성공한 정환은 혜란의 과거를 이해해주었고, 그녀의 진정한 모습을 받아들였다.

"엄마, 정말 가시는 거예요?" 준호가 물었다.

혜란은 아들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래, 엄마의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고 해. 미안하고... 고마워."

수진이 다가와 엄마를 꼭 안았다. "행복하세요, 엄마. 자주 연락해요."

혜란은 눈물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꼭 그럴게."

정환이 부드럽게 말했다. "혜란 씨, 우리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혜란은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엄마는 이제 진정한 행복을 찾아 떠나볼게. 너희도 각자의 길에서 행복을 찾길 바라."


비행기에 오르며 혜란은 창밖으로 서울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과거의 그림자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이제 정말 새로운 시작이구나.' 혜란은 생각했다. '더 이상 꽃뱀도, 가면을 쓴 채로 살아가는 여자도 아닌, 그저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

정환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긴장되세요?"

혜란은 미소 지었다. "아뇨, 오히려 설레요. 이제 진짜 나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비행기가 이륙하며 혜란의 가슴은 희망으로 부풀었다. 그녀의 제2의 인생, 진정한 사랑과 함께하는 새로운 삶이 시작되고 있었다.

창밖으로 구름 사이로 밝은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마치 혜란의 밝은 미래를 예견하는 듯했다.

'이제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까?' 혜란은 생각했다. 그리고 그 대답을 알기 위해, 그녀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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