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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돼지 후니 Oct 29. 2024

인생과 등산

산을 오르며 찾은 나의 길



프롤로그: 첫 발걸음


나는 언제부터인가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건강을 위해서였다. 주말마다 동네 뒷산을 오르내리는 것으로 시작한 등산이, 어느새 내 인생의 나침반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때의 나는 서른셋,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매일 아침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똑같은 길을 따라 회사로 향하고, 똑같은 자리에서 모니터만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가는 일상이 전부였다. 삶은 안정적이었지만, 무언가 허전했다. 마치 높은 빌딩 숲 사이에 갇혀 있는 것 같은 답답함이 늘 나를 따라다녔다.


제1장: 첫 번째 도전

"후니야, 이번 주말에 관악산 가지 않을래?"

친구 민수의 제안은 갑작스러웠다. 평소 운동이라곤 출퇴근길 걷기가 전부였던 나에게 산행은 부담스러운 도전이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왠지 모를 용기가 솟았다.

"그래, 한번 가보자."

첫 산행은 예상대로 힘들었다. 얼마 오르지도 않았는데 다리는 후들거리고, 숨은 턱까지 차올랐다. 중간에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민수가 내 페이스에 맞춰주며 끊임없이 응원해주었다.

"천천히 가도 돼. 산은 도망가지 않아."

그의 말은 단순한 위로 이상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인생도 마찬가지구나. 남들보다 조금 늦더라도, 내 속도로 가면 되는 거였다.


제2장: 위기와 깨달음

첫 산행 이후, 나는 주말마다 산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낮은 산들로 시작해서 점차 난이도를 높여갔다. 체력도 늘고, 등산 장비도 하나둘 갖추어 갔다. 하지만 진정한 시련은 그때부터였다.

설악산 대청봉 등반을 준비하면서였다. 겨울산행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나는 무모한 자신감으로 도전장을 냈다. 결과는 참담했다. 갑작스러운 눈보라에 길을 잃었고, 체력은 바닥났다.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가 엄습했다.

"진정해, 후니야. 한 걸음씩만 생각하자."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깊게 숨을 고르고, 등산학교에서 배운 대로 천천히 움직였다. 비상식량을 먹고, 물을 마시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다시 한 걸음, 또 한 걸음.

마침내 산장을 발견했을 때의 안도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날 밤, 따뜻한 침낭 속에서 나는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인생의 위기도 이와 같구나. 당장 눈앞의 상황이 절망적으로 보여도, 차분히 생각하고 한 걸음씩 나아가면 길이 보인다는 것을.


제3장: 동료와의 만남

산악회에 가입한 것은 그로부터 얼마 후였다. 혼자 산을 오르는 것도 좋았지만, 함께하는 기쁨은 더욱 특별했다. 서로 다른 직업과 나이,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특히 진우 형과의 만남은 큰 전환점이 되었다. 은퇴 후 산행을 시작했다는 그는, 나보다 열 살이 많았지만 놀라울 정도로 건강했다.

"후니야, 산에서는 모두가 평등해. 돈도, 지위도 중요하지 않아. 오직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마음만 있으면 돼."

진우 형의 말은 내 가치관을 바꾸어놓았다. 회사에서는 늘 경쟁과 성과에 쫓겼지만, 산에서는 서로 돕고 배려하는 것이 당연했다. 이런 관계가 진정한 인간관계가 아닐까.


제4장: 길 위에서 만난 나

어느 날, 진우 형이 특별한 제안을 했다.

"후니야, 지리산 종주 한번 도전해볼래? 2박3일 동안 종주하면서 네 안의 또 다른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거야."


처음에는 망설였다. 몇일 이자만 회사에 휴가를 내야했고, 그동안 해본 적 없는 장거리 트레킹이었다. 하지만 일상에 지쳐있던 나는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다.


종주 첫날, 천왕봉을 향해 걸으며 나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 산속에서, 온전히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둘째날 발바닥이 부르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내 안의 무언가가 깨어나는 것 같았다.


"산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중간 산장에서 만난 할아버지의 말씀이 가슴에 깊이 박혔다. 

"당신이 걸은 만큼만 앞으로 가고, 당신이 올린 만큼만 높아집니다."


마지막 날,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모든 것이 흐려지고 미끄러웠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나는 걸었다. 비를 맞으며 걷다 보니 웃음이 났다. 이렇게 자유로운 적이 있었던가? 회사에서 느끼던 스트레스, 인간관계의 고민들이 비와 함께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종착지에 도착했을 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2박3일 동안 나는 단순히 산길을 걸은 게 아니었다. 내 안의 두려움과 한계를 마주하고, 극복하는 여정이었다.


제5장: 새로운 시작

지리산 종주 후, 나는 큰 결심을 했다. 백두대간을 한번 도전해 보고 싶어졌고, 동해안의 해파랑길부터 해안가 국토종주에 도전해 보고 싶어졌다. 회사 업무와 병행하면서 한 달에 마지막 주 하루 휴가를 내고 2박3일을 걸어보기로 계획했다.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주변에서 많이 우려했지만, 왠지 막연하지만 확신이 있었다.


"길 위에서는 아무 생각이 없어요. 특히 오래걷다가 다리에 통증이 오면 모든 신경이 다리 통증에 집중되어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없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다음날이면 머리도 개운하고 다리 통증도 없어져요. 그리고 아침 햇살을 받고 다시 걸어갑니다. 그렇게 6년동안 계속 걷도 있고 이번달도 어딘가를 걷고 있을 겁니다."


지금 나는 매월 함께한 산악회 사람들과 함께 길을 걷는다. 때로는 하루 코스로, 때로는 며칠씩 이어지는 장거리 트레킹으로. 그들과 함께 걸으며 나는 매번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특히 나는 지친 지인들과 '함께 걷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단순한 산행이 아닌, 자신을 돌아보고 재충전하는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예전의 나처럼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산에서 찾은 평화를 나누고 싶었다.


제6장: 사계절의 길

계절마다 산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봄에는 새싹이 돋고, 여름에는 짙은 녹음이 우거지고, 가을에는 단풍이 물들고, 겨울에는 하얀 눈이 쌓인다. 마치 우리 인생처럼.

나는 이제 안다. 인생의 모든 순간이 의미 있다는 것을. 힘들고 고된 오르막길도, 편안하고 즐거운 내리막길도, 모두가 내 삶의 일부라는 것을.

지금도 나는 등산화 끈을 조아맨다. 새로운 길, 새로운 도전을 향해. 산이 거기 있어서, 내가 여기 있어서, 오늘도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한다.


에필로그: 끝나지 않은 여정


오늘도 나는 길을 걷는다. 예전처럼 빠르게 걷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간다. 때로는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때로는 무릎이 아프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길 위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인생은 정상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즐기는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 여정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것.


나는 앞으로도 계속 걸을 것이다. 새로운 길을 찾아,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모든 순간들을 소중히 간직할 것이다.


산과 길은 늘 그 자리에 있다. 우리를 기다리며,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 그리고 나는 늘 그 길을 찾을 것이다. 내 인생의 스승이자 동반자로서의 산과 길을.


이것이 바로 나, 후니의 이야기다. 걸으며 찾은 나만의 길, 그리고 아직도 진행 중인 성장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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