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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Muse Sep 08. 2022

September Morn, 그리고 소소한 일상

태풍이 왔다 갔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맑고 청명한 날씨네요.  평소 같았으면 점심에 손님들 식사 준비로 정신없이 바쁠 시간인데 잠시 휴업을 하다 보니 이렇게 앉아 선풍기 바람맞으며 여유롭게 글을 쓰고 있어요.


퇴원하고 처음 이런 시간을 가질 때에는 뭔가 어색한 기분이었는데 이제 열흘 가까이 되어가다 보니 그런대로 적응이 됩니다.

스스로 대견한 것은 그래도 퇴원 이후 계속 병원에서 제공받던 식단의 칼로리와 구성을 따라 그대로 식단 유지를 하고 있다는 점이지요. 칼로리와 영양소 체크도 꾸준히 하면서요.

사장은 한식파라 아침에는 양식과 한식 식단을 병행합니다

저녁에 야식과 술을 끊은 덕분인지 체중도 깜짝 놀랄 정도로 감량이 되었습니다. 다 술살, 안줏살이었던 거예요. 즐거움과 달콤함에는 반드시 그에 따른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또 한 번 절실히 느낀 요즘입니다. 그래도... 먹고 마시는 즐거움이 없다면 이 세상 살아가는 것이 너무 퍽퍽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고요.

낮에는 가게에 나와 지나가는 사람도 구경하고 살랑살랑 밀린 일도 조금씩 하고, 더러 스펀지 매트 위에 누워서 낮잠도 자면서 하루를 보내요. 집은 땅에서 멀리 떨어진 위층이라 지나가는 사람이 잘 안 보여 답답하거든요.

바질이 꽤 많이 자라 매일 한 줌 씩 뜯어먹고 있어요.

이 시간 (낮 12시 반) 즈음이면 인근에서 점심 식사를 마친 손님들이 커피를 사 들고 삼삼오오 끊임없이 지나가곤 하는데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아, 저 손님들이 다 우리 식당에 오셨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으로 속이 상하기도 해요. 그러나 건강이 우선이니 마음을 돌리고 내일을 기약합니다.

지난주에는 소고기집에 가서 영양보충을 하기도 했어요. 2인분 한 판을 시키면 다 먹고 밥에 찌개에 아주 잔치를 벌이고 왔는데 이젠 한 판은커녕 반의 반 판도 못 먹고 그냥 구워서 포장해 왔습니다. 이런 굴욕이.... 고깃집에 가면 고기로 배를 채워야지 밥을 먹는 건 반칙이자 무효라고 늘 주창해왔던 저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습기가 가시고 청량한 바람이 그지없이 좋긴 하지만 더불어 따라오는 것이 알레르기 질환이지요. 비염에 결막염에 고생이 정말 큽니다. 이번엔 알레르기 약도 먹기가 조심스러워서 생으로 앓아내고 있어요. 견디다 못해 굴러다니던 아이스팩을 냉동시켜 눈에 갖다 대고 있으니 훨씬 나아지네요. 거의 크리넥스 반 통을 반나절에 쓰고 있는 것 같아요. 알레르기로 고생하시는 분들은 핵 공감하시지요?


그래도 한 가지 요즘 재미가 있다면 한동안 손을 놓았었던 인터넷 뉴스 매체에 기사를 써서 올리기 시작했다는 거지요. 2005년 즈음 홍콩으로 이주하면서 한동안 잊고 살았었는데 거의 십수 년 만에 다시 기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때로 메인 톱에도 기사가 걸리고 사이드 톱에도 올라가고 하는 걸 보면 보람도 있고 소소한 기쁨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 사이 생일을 맞기도 했어요. 이젠 특별히 생일을 챙기는 것도 귀찮아서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막내딸이 조개 미역국도 끓여주고 동그랑땡도 부쳐주고 엄마 건강 위해서 특별히 설탕 없고 밀가루 없고 뭐 없고 뭐 없다는, 그래서 몸에 아주 좋다는 케이크도 사다 주었어요. 눈물 나도록 고맙고 대견했습니다.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약 먹을 시간 챙겨주고 식사 준비에서 설거지까지 그리고 집안일까지 모두 도맡아 해주는 남편에게도 정말 고맙구요. 기운 빠져 잔소리 덜하고 큰소리 안 내니 마누라에게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 것 같요.

다산 정약용 유적지

며칠 전 바람 쐬러 다녀온 다산 유적지. 13년 전에 가 보고 처음인데 너무 달라졌어요. 20년 전엔 물가까지 들어가서 거북이 방생도 해 주었는데... .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참 좋았던 기억이에요.개발에 추억이 묻혀진 것이 좀 아쉬웠습니다.


15일까지를 휴무로 잡아 놓았는데 추석 연휴까지 잘 쉬고 슬슬 기운 차려서 약속한 날에는 가게 문을 꼭 열고 싶네요. 그렇게 정말 열심히 바라고 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OQP7FW7wT0U

작년, 이맘때쯤 가게를 처음 오픈하고 나서 매년 9월이 오면 이 노래를 꼭 연주해야지라고 마음먹었던 곡이 있어요. 닐 다이아몬드의 September Morn 이란 노래인데요. 안드레아 보첼리도 불렀구요.


피아노와 베이스 듀오 연주로 고객들께 들려드리곤 했는데 멜로디와 리듬 구석구석에 가을의 청량함과 아련함이 스며들여 있는 곡이에요. 9월의 반자락이라도 이 곡을 연주하면서 가게를 찾은 손님들과 가을 느낌을 공감하고 나누고 싶네요. 꼭 그럴 수 있기를....


오후에는 재래시장에 잠시 다녀옵니다. 송편도 조금 사고 구워 먹을 고기도 사고 그리고 사람 냄새도 맡으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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