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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Muse Sep 27. 2021

이런 일기를 써도 될까?

나의 체력을 보충해주는 장어와 1차로 마신 소주.

(오늘은 '~습니다'가 아닌 '~ 했다 '체로 쓰렵니다. 왜냐하면 한 잔 마셨거든요.)

식당을 운영한다는 것은, 아니 자영업을 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란 것을 새삼 느낀다.


10시 영업 마감을 앞두고 이미 9시 반 무렵이 되면 이미 내 마음의 셔터 문은 닫힌다. 30분 남겨두고 와인 바에 들어올 손님은 안 계실 테니까.오늘은 일요일이라서 생각만큼 매출 실적이 좋지 않았다. 오픈이라는 특수를 생각하면 더더욱이.


어차피 오픈 특수를 기대한 것도 아니었고, 리뷰 체험단이라든지 대가성 이벤트는 아예 생각도 하지 않고 시작했던 것이니 '그럴 수 있다'라고 생각을 해도 매일 이 시간 즈음이 되면 마음이 착잡해진다.


내가 과연 옳은 선택을 한 것일까?

무모한 도전은 아니었을까?

과연 코로나라는 이 위기를 버텨낼 수 있을까?

'좋아하는 일'이 '잘하는 일'이 될 수 있을까?


오픈한 지 삼 주 차 정도 되어 간다.

심적으로 신체적으로 모두 힘들어서 환절기 알레르기부터 시작해서 자잘한 트러블이 끊임없이 생긴다. 가지고 있는 약 봉지만 한 봉지, 챙겨 먹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니고 다니는 영양제 등등이 한 봉지, 먹으면 힘 난다는(?) 각종 진액들도 한 박스.

사실 볼 때마다 민망한 것은 내가 일 하는 주방 한쪽에 '가득' 모셔둔 성물들이다. 성모님 사진, 십자가, 묵주 등등등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신앙생활도 더 열심히 할걸...) 마음이 약해지니 기댈 곳은 내가 믿는 신뿐이란 생각으로 집에 있는 온갖 성물들은 다 모셔다 두었다. 아침마다 오픈하면서는 아베 마리아를 묵주 기도 대신 연속 재생한다.


매출이 좋아서 힘을 얻고 기운이 나는 날은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힘든 줄을 모른다. 그러나 코로나로 오늘같이 일찍 영업을 종료 '당하고' 문을 닫아야 하는 날은 정말 마음이 참담하다. 힘이 든다. 옆 가게는, 윗 가게는 어떤가 하는 마음으로 자꾸 두리번거리게 되고, 상황을 모르고 개업을 한 것도 아니지만 초조한 마음이 든다.


남들처럼 오픈 리뷰 이벤트도 하고, 하루에 열두 번도 넘게 전화 오는 리뷰 체험단이란 것도 했어야 했는지에 대한 고민도 잠시, 아니 매일 매 순간 해 본다. 결국 하지 않는 것으로 정해져 있지만 마음은 늘 흔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기력이 딸리는 것 같아서 쿠팡에서 장어를 잔뜩 주문했다. 비싸서 민물장어는 못하고 바닷장어로만. 그래도 주문했더니 프레쉬 주문이라 새벽에 바로 배송받아서 오늘 포식을 했다. 오픈하고 일주일간 모두 합쳐 서 너 끼를 먹고도 배고픈 줄 모르고 긴장해 있었던 때보다는 지금이 낫다. 장어도 먹을 수 있으니.


장사랑 사업하는 사람은 절대로 망하는 그 순간까지도 '힘들다'는 소리를 입에 담아서 안된다고 한다. 내일 파산을 하더라도 오늘은 좋은 옷 입고 좋은 차 타고 사업이 잘 되는 양 보여야 주변의 사람을 잃지 않는다고.


그런데....

내가 말하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모르는 것이 아니란 것을 살면서 깨달았다. 호흡으로 공기로 다 안다.코로나로 확진자가 3천 명이 넘는 이 시국에 힘들지 않은 자영업자가 어디 있을까.그냥 이 공간만이라도 내 마음을 터 놓고 싶다.

내 브런치, 내 일이니까.


이 시간, 내가 좋아했던 2000년대 음악들이 흐르고 있고, 내 몸보신을 해 줄 장어가 내 옆에 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내가 좋아하는 버번과 토닉이 있고, 내 마음을 털어놓을 브런치 일기가 있고, 내일이 있고,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은 이제 시작인 가게가 있고, 내가 좋아하는 피아노가 가게에 있고, 오늘도 지인이 찾아주었고. 난 아직 희망이 있고, 난 할 일이 많고, 내가 예쁜 길을 발견했다고 쓴 글에 공감해 준 sns 친구들이 있고, 아직은 이런 마음을 풀어놓을 용기도 있고, 뭐가 있을까? 아직은 내가 더 마실 버번위스키가 거의 한 병 가득 (비록 편의점 저렴이라도 맛은 굿) 있고, 있고, 있고... .


다 있으니 또 내일 아침을 기다려야지.

아! 아침이면 나를 맞아 줄 내 가게의 테라스도 있다. 아침 햇살이 왕창 밀고 들어오는 내 테라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내 가게의 테라스. 이 곳의 아침과 밤의 느낌은 참 다르면서 모두 좋다

        

'매일 아침 오픈하고 이 테라스에 나가 앉아 모닝커피만 마셔도 한 달에 15만 원은 임대로에서 건지는 셈인거야!' 가끔은 이렇게 위로도 삼는다. 라테나 캐러멜 마끼아또를 만들어 먹으면 그보다 더 건지는 셈이다


그리고 새벽 한 시가 되도록 촛불 켜고 노트북 켜고 내 마음을 적을 이 공간이 있다는 것이 나에겐 축복이야.


내일 해가 뜨고 점심시간이 되면 난 다시 주방으로 돌아가서 머리에서 귀를 가리는 부직포 모자( 폼은 정말 안 나지만 머리카락 방지엔 최고)를 쓰고 앞치마를 두르고 식닥거리면서 일을 하다가, 또 시간이 되면 홀에 나오느라 옷을 갈아입고 피아노를 치고 그렇게 또 하루를 시작하겠지.


내일 이맘때쯤이면 난 무슨 생각을 할까? 어떤 음이 들까?


기쁠까? 슬플까? 후회될까? 불안할까?

알 수 없는 내일이다.

매일 아침 오픈하면 눈에 들어오는 가게 모습. 아무도 없는 공간에 '안녕?'하고 인사를 하고 들어간다면 남들은 웃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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