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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Muse Sep 28. 2021

베란다를 청소하며

나를 찾아온 초록 손님 두 분을 맞았다

제 식사 시간은 언제나 그렇듯 점심에 손님들의 식사를 준비해드리고 난 이후 브레이크 타임이 시작되는 3시경입니다.


오늘은 근처 버거킹에 가서 테이크 아웃을 해서 해결했지요. 제가 좋아하는 아빠 상어 단품에 소스는 적게, 야채는 추가를 하고 위에 덮인 빵 한쪽을 덜어내고 먹는 패턴입니다.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잔과 함께 식사를 마치고 베란다 낙엽 정리를 하러 나갔는데....

베란다 한쪽에 심어진 오래된 큰 나무에 벌레가 든 것 같았어요. 자세히 보니 송충이!

아직 눈에 보이는 것은 몇 마리 되지 않아 얼른 검색을 한 후 퇴치에 용하다는 약을 가져다가 박멸을 했습니다.


자연 공간이니 익충이든 해충이든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영업하는 장소에서는 심히 곤란한 일이기에 손을 쓸 수밖에 없었어요. 나뭇잎을 많이 갉아먹었더라고요. 나이가 든 탓인지 약을 뿌리면서도 어쩐지 딱하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이제 겨울잠을 자야 하는 수국, 파인 세이지, 바질, 로즈메리, 애플민트.


그리고 양파를 담아 두는 망에서 저녁 장사 준비를 하려 몇 알을 꺼내 쥐고 들어왔습니다. 통풍이 되는 그늘진 곳에 두니 김치냉장고 저리 가라네요. 무르지도 않고 신선함이 그대로라서 정말 좋습니다. 다이소에서 산 저 3천 원 바구니가 큰 몫을 합니다. 원래는 우산꽂이 인제.

그러고 나서 깜짝 놀랐어요. 베란다 난간 사이 바닥에 세상에... 작은 씨앗이 움을 틔웠어요. 제법 자라났더라고요.


이제 좀 있으면 서리 내리고 추워질 텐데 저 녀석이 계속 삶을 지탱해나가려나 하는 걱정도 들더군요.

'어디서 날아온 씨앗일까? 여기를 어떻게 알고 왔을까? 개업 인사라도 해주러 왔나?' 그런데 이 식물의 소속과 출처를 궁금해하는 것도 잠시, 다시 뒤돌아서 또 한 번 깜짝 놀랐네요.

베란다 옆 창고 앞, 로즈메리를 심었다가 이사하면서 분갈이를 하고 남은 화분에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작은 식물이 또 자라고 있었어요.


'넌 누구냐?'

어찌 보면 바질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잡초 같기도 하고.


물 준 적도 없고 거기 있으라고 데리고 온 적도, 거기 살아도 된다고 허락을 한 적도 (건물주는 아니지만 세입자니 그 정도 권리는 있음) 없는데 어느 사이인가 자리를 잡고 생명력을 뿜어내는 초록이.


이름이 뭔지, 얘는 또 소속과 출처가 어디인지 궁금해하다가 얼른 저녁 장사 준비를 해야 해서 주방으로 종종 달려왔네요.


언젠가 가게 앞 화단을 장식하려고 수국이며 라벤더며 수만 원을 주고 사다가 놓은 적이 있는데, 그에 비하면 관상용으로도 무엇으로도 보잘것없는 잡초 초록이 두 개지만 오늘 저에게는 그래도 반갑습니다.


코로나로 마음이 답답해서 며칠 전 푸념의 일기를 썼더니 SNS 이웃분께서 답글로 이런 조언을 해주셨더군요. 보는 순간 마음이 쿵 울리면서, 큰 위로가 되었지요.


코로나 때문에 자영업자분들을 비롯해서 많은 분들이 힘드신 거 같아요...

라뮤즈님께서 주변에 소중한 것들로 위로를 하듯이 저도 힘내 보려 합니다!! 파이팅!!

2021.9.28. 00:15


저에게 알아서 다가와 준 저 두 초록이 녀석은 분명 제게는 화환 이상의 격려이고 응원이라 생각하렵니다.


얼마 전 작고 예쁜 길을 발견해서 두근거렸던 마음처럼 오늘도 그렇습니다.그래서 저녁 장사 열심히 해서 매출 한 번 크게 올려보려고요.


"어이, 초록이들! 알아서 잘 자라렴. 아줌마 바빠서 물 주고 비료 줄 시간은 없어. 그냥 어디선가 너 스스로 날아와서 자리 잡고 앉은 그 힘으로 이제 추워질 겨울 동안에도 잘 버티고 봄을 맞아보렴. 난 집세는 안 올리니 그 걱정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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