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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Muse Oct 06. 2021

[사장 일기]바다가 저에게 찾아왔어요

도심 속에서 찾은 바다

세종대 AI관 옆에 만들어진 얕은 인공 호수가 저에게는 '바다'입니다

'속초 바닷가'

마음이 울적해지거나 일상에 지칠 때면 찾던 곳입니다.


 이십 년 전부터 매년 한두 번은 찾던 곳인데요. 제 성격상 새로운 숙소와 새로운 볼거리를 찾아다니기보다는 그냥 편안한 곳, 익숙한 곳을 가기 때문에 늘 숙소는 라마다 호텔의 같은 층( 하프 오션 뷰) 객실이고 가는 식당도 매년 똑같습니다. 그래서 항상 카메라에 담겨 오는 사진도 똑같은 구도에 눈에 익숙한 사진들뿐이지요.

대부분은 가족과 함께 승용차를 타고 이동을 하곤 했지만 한  번은 그냥 무작정 너무나 바다가 보고 싶어서 구의 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떠난 적도 있습니다.  

밤늦게 회사 일을 마친 남편이 차를 몰고 와서 새벽녘에 같이 나가 회도 먹고 밤바다도 보고 놀다 온 기억도 있네요.  


남편 퇴근을 기다렸다가 함께 가면 되는데 그냥 그날은 '지금 아니면 안 돼' 란 생각이 강했던 것 같아요.  늦은 오후의 햇빛, 바람, 뭔가 알 수 없는 기운이 제 등을 속초로 떠다민 듯합니다.


'이어폰도 챙겨 오지 않아서 터미널 편의점에서 급히 사서는 좋아하는 노래를 버스 출발부터 속초 도착까지 연속 듣기 하면서 갔던 그날이 참 어제 같네요.  잘 가는 맛집은 따로 없고요. 그냥 대포항 이 집 저 집을 기웃거리면서 어떤 날은 바가지도 써 보고 어떤 날은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운 식당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맛집을 찾아다니기보다는 그냥 발길 닿는 대로 가다가 배고프면 찾아 먹다 보니 제대로 된 맛집은 잘 모릅니다.


아! 한 곳은 참 잘하는 집이 있었어요. 물회를 하는 곳이었는데 정말 싱싱한 물회를 제대로 맛볼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 압구정동에도 분점을 냈다던데 역시나 이름을 기억 못 하겠네요.  아는 분은 아실 거예요. 워낙 유명한 맛집이라서요.

벤치도 있어서 오가는 사람들의 쉼터 역할을 하는 바다

얼마 전 가게 개업을 앞두고서 '속초 여행을 한 번 다녀올까 말까' 남편과 고민을 했습니다. 가게를 개업하고 나면 초기에 바빠서 당분간은 휴가를 못 가질 것이 뻔하니 미리 좀 쉬고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지요.

그러나 남편 회사에 급한 일이 생기는 바람에 일단 여행은 가게가 좀 자리를 잡은 뒤로 미룬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계획을 미룬다고 마음도 미루어지는 것이 아니더군요. 바다 냄새, 바다 바람, 바다 색깔, 바닷소리...  틈이 날 때마다 마음은 속초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가고 싶다, 떠나고 싶다, 바다 보고 싶다' 주방에서도 카운터에서도 피아노를 치면서도 늘 마음속에는 속초 바닷가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아! 그런데 오늘 테라스 쪽 테이블을 치우다가 눈에 딱 들어온 것이  있었는데요. 그것은 바로 '도심 속 바다'였습니다.  


실제로는 세종대 AI관 쪽에 만들어 놓은 아주 얕은 인공 호수 같은 것입니다. 저희가 처음 가게를 열었을 때엔 저 네모난 바다가 없었거든요.


물이 채워지지 않은 빈 공간이었는데 얼마 전 물을 채웠나 봅니다. 너무 바쁘게 일하고 정신없이 지내느라 제 코앞에 바다가 생긴 줄도 모르고 있었던 거죠.

태양의 위치에 따라 아침과 오후의 수면의 반짝이는 부분이 바뀝니다

네모난 틀 안에 갇히고 타일 바닥 위에 올려진 바다였지만 너무나 반갑고 너무나 좋아서 달려 나가서 찰칵찰칵 사진을 찍어봤습니다.

어차피 속초 해변의 바닷물도 육지라는  틀 안에 담긴 물이긴 마찬가지고, 그 바닥에 무엇이 있는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바위에 닿아 부서지는 파도가 좋았고, 바람에 일렁이는 물결이 좋았고, 햇빛에 반짝이는 수면이 좋아서  바다를 보러 간 것이었으니까요.


 지금 이 네모진 수조에 담긴 물은 저에게 그날의 바다와 다름없습니다.  반짝이고 부서지고 일렁이면서 저에게 반갑게 다가오는 바다.


가까운, 아니 몇 걸음만 걸으면 바로 코앞에서 볼 수 있는 바다가 있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그 옆에 벤치도 있어서 다음번엔 브레이크 타임에 도시락을 한 번 싸서 나와 볼 계획입니다.

김치냉장고의 연어 회 조금 썰어 담고 물 병에 담아서 와인 한잔하려고요. 그럼 바닷가에서 회 한 접시 먹은 셈이 되겠지요?


다음엔 그 사진도 한 번 찍어서 보여드릴게요. 어떤 도시락이 '도심 속 바다 ' 해변에서 먹기에 가장 잘 어울릴까 벌써부터 마음이 들뜹니다.

(궁상떤다고 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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