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전 잘 먹고 온 오늘 점심입니다. 오늘은 브레이크 타임에 모처럼 여유가 있어서 세종대 학생 식당에 다녀왔습니다. 맛있고 저렴하기로 유명한 세종대 학생 식당이 바로 옆에 있어서 가끔 이렇게 가성비 좋은 외식을 하고 옵니다. 저는 모둠 가스 정식을, 같이 간 일행은 돈가스 오므라이스를 주문했어요.
각자 주문하고 나서 음식이 나온 후에야 조금 후회를 했습니다. 같은 돈가스, 튀김류를 먹자니 좀 느끼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너무 시장했던 나머지 메뉴 선택에 있어서 연합전술력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비빔국수나 쫄면 같은 것을 주문했더라면 완벽했을 텐데요.
세종대 학생식당 음식들은 저렴하지만 그럼에도 나름대로의 플레이팅에 성의를 보입니다. 어린잎을 올려 초록이 장식을 했다든가, 모둠 돈가스 마카로니 샐러드에 파슬리로 장식을 한다든가 하는 것이죠. 별 건 아니지만 만든 사람의 마음이 느껴져서 기분이 좋습니다.
제 입은 식당을 하기에는 좀 싱거운 편입니다. 저염식이 건강에는 좋다지만 식당 음식이 너무 심심하면 손님들에게 외면을 받습니다. 그래서 가게 음식의 간을 볼 때 염도계를 늘 사용하곤 하는데요. 세종대 학생식당의 음식들은 바깥 음식이라고 하기엔 염도가 낮은 편이라서 제 입에 꼭 맞습니다.
장국도 된장국 베이스인데 아주 간이 약하고 콩나물무침도 딱 좋습니다. 어쩌면 보통 입맛 가지신 분은 좀 싱겁다 할 정도로요. 세종대 학생 자녀 두신 부모님이라면 안심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건강식이네요.
배가 고파서 메인 음식이 나오기 전 셀프 바에 가서 허겁지겁 콩나물이랑 장국을 담아왔어요. 반찬을 셀프로 먹을 수 있는 곳은 어쩐지 마음이 푸근해져서 좋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콩나물이랑 어묵볶음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성수역 근처의 김밥 집이 한 곳 있는데 거기가 그래서 늘 손님으로 북적이지요. 라면을 먹어도, 김밥을 먹어도 매운 콩나물무침이랑 어묵볶음은 무한 리필이거든요. 오래간만에 먹고 싶네요
제 가게의 코스 정식에도 수프가 들어가는데요. 수제로 루(Roux) 만들고 생크림 넣어 만드는 수프보다 가끔은 저런 인스턴트 수프가 어울리고 맛있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냉동 튀김 돈가스에는 인스턴트 수프가 제맛이에요. 후추도 조금 더 올려주고 농도도 더 묽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오래간만에 맛보는 수프라서 그런지 맛있었습니다. 저는 오뚜기 보다는 청정원 수프를 더 좋아하지요. 그중에서도 버섯 크림수프가 제일 맛있어요.
학생들이 역시나 돈가스를 좋아하나 봅니다. 메뉴에 돈가스 조합이 많이 들어가 있네요. 다음에는 라면을 한 번 먹으러 와야겠습니다.
제가 고른 가장 비싼 메뉴가 제 가게의 음료 가격 정도네요. 식사를 하면서 일행에게 물었습니다.
"학식의 제일 비싼 메뉴가 우리 가게에 음료 값이네? 세종대 학생들이 우리 가게 메뉴 보면 뭐라고 할까?"
"글쎄, 비싸다는 사람도 있을 테고 자릿값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
가게마다 임대료와 콘셉트가 다르고 업종도 제 각각이니 음식, 음료 가격이야 다를 수 있지요. 그러나 적어도 '자릿값'으로 여겨지는 음식값이 되지는 않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보았습니다. 파스타 드시는 손님께 파라솔 펴고 돗자리 깔아드릴 것도 아니니까요.
오전 내내 일하다가 꿀같은 브레이크 타임에 점심을 먹을 때에는 저 역시 귀차니즘이 발동합니다. 사람이 제일 움직이기 싫은 때가 배불리 먹고 가장 편한 기분이 들 때잖아요. 무조건 자리는 퇴식구에 가까운 쪽으로 잡고 다 먹고 일어나서의 동선을 최대한 줄입니다. 어차피 반 정거장쯤은 걸어서 올 테지만 식판을 들고 걸어야 하는 일은 힘이 들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얌전하게 식판을 두고 나오는 저에게 학생 식당 아주머니가 '다른 사람과 어깨와 어깨, 어깨와 다른 신체 부위를 부딪치는 일을 속되게 이르는 말(어학 사전)'의 행동을 하고는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홱 가시더라고요. 세 글자, 뭔지 짐작 가시죠? 속된 표현이라 그대로 적기 좀 ... .
"아휴, 브레이크 타임인데 힘들어서 블라블라 블라" 하시면서요. 순간 기분이 상당히 상하긴 했지만 '그래, 나도 식당 하는 사람인데 그 마음 알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곧 상한 기분을 털어냈습니다. 아무리 기계가 대신한다 해도 그 일이 보통 일이겠나요.
그 '보통 아닌 일'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가게에 돌아와 아메리카노 한 잔 내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글을 씁니다. 그 '보통 아닌 일'이 그래도 아직은 설렘으로 다가와주어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눈 높이에서 한 번 찍어 봤어요. 또 색다른 경험이네요.
이제 좀 있으면 저녁 영업을 시작해야 하는데 지금 마시는 이 커피가 활력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