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 Muse Oct 22. 2021

나뭇잎 마음속 소리를 들어볼까?

아침 출근 길 만난 잎새들의 이야기

나의 프리즘을 내려 놓을 때 네가 보인다.


길가 한편 담장에 핀 보슬보슬 하얀 꽃, 이름이 뭐니?

아침 출근길, 주차를 하고 조금 걷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길이 나온다. 예전에 발견했던 동네의 숨은 예쁜 골목길과는 또 다른 감성. 그 길은 한낮에도 큰 나무들이 우거져서 빛이 잘 안 들어오는 약간은 어두운 느낌이라면 아침에 마주하게 되는 이 길은 바로 앞에 태양이 떠 있어서 선글라스를 끼지 않으면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길이다.

(동네분을 위해 첨언하자면, 그리네 카페에서 세종대 쪽으로 나가다가 손수제 치킨에서 왼편으로 꺾어서 능동로 대로로 나가는 길입니다.)


이제 겨울 들어가는 마당에 무슨 영화를 보자고 벽돌 틈을 비집고 이렇게 꽃을 피웠는지... . 애처롭기도 하고 '너는 어쩌다가 거기 들어가서 꽃을 피우게 되었니?'라고 묻고 싶기도 하다. 비좁고 답답한 공간이 힘들지는 않을지 걱정도 해본다. 그러나 그 또한 나의 생각뿐일 수도 있겠다.


너무나 일상적으로 '저 사람은 이렇겠지, 이 사람은 이래서 이럴 테지.' 하는 내 생각이 나중에 알고 보면 전혀 엉뚱한 것이라서 미안해하고 놀라고 당황한 적이 꽤 된다. 누구나 나름대로의 프리즘으로 세상을 보겠지만 내 주변은 그 광각을 초월하는 너무나 다양한 스펙트럼의 상황이 펼쳐지기에.  선의를 품은 연민도 때로는 주제넘을 수 있다.


어쩌면, 저 꽃은 이런 마음일 수도 있겠다.

"아줌마,  댁 눈엔 여기가 좁아 보여도 난 내가 터 잡고 사는 이곳이 너무나 편하거든요.  벽돌이 꽉 받쳐줘서 평생 보정 속옷 안 입어도 되는 좋은 집인데 뭔 걱정? 주제넘은 동정하지 말고 가던 길 그냥 가세요."

세상엔 내가 모르는 마음, 내 눈에 안 보이는 생각들이 너무나 많이 존재한다.

나무의 덩치에 비해 화분이 너무 작은 것 아닌가요?

조금 지나다 보면 이런 고무 대야에 심어 놓은 나무도 보인다. 매일 아침 보면서 '아, 저 나무 분갈이 좀 해주지' 하는 생각이 매번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이번엔 그냥 무심히 넘어간다.  오지랖을 부리면 싫어하는 세상이다.


세종대 돌담길, 나를 반겨주는 담쟁이넝쿨이다. 이제 조금씩 가을 옷을 입고 있네. 담벼락에 꼭 달라붙어 의지하며 사는 인생, 아니 잎생인가? '평생 벽에 딱 붙어 안 떨어지려고 바둥바둥 사는 네 잎생도 가련하다'라는 마음이 들려다가 멈췄다.

"아줌마, 아줌마도 어딘가에 붙어 사는  인생 살고 있잖아요. 사랑을 얻으려, 돈을 벌려, 자기를 찾아 헤매면서  불안해하고, 인정받으려 아등바등 사는 것 나랑 뭐 달라요?"


내가 너를 다 안다는 듯이 누군가가 말하면 기분이 별로다. '네가 나를 다 안다고? 얼마나?' 하는 욱하는 마음이 괜히 들어 따지고 든다.  그런데 참 웃기는 것은 때로는 '네가 나를 너무 몰라줘서'라며 원망을 하기도 한다. 어디에 맞추라고?  어렵다.


적당히 알면서 적당히 바라봐 주고 적당히 참견하고 적당히 공감해 주면 문제가 없으려나?  결국 중요한 것은 '너라는 존재'에 대한 인정인 것 같다.  

'네가 편하면 나도 편해, 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

덕수궁 돌담길 저리 가라입니다. 운치가... .

내가 좋아하는 꽃과 나무와 담쟁이가 스스로 편하고 좋다면 된 것이다. 벽돌이 무거워 보이든, 화분이 작아 보이든, 담벼락에 안간힘 쓰고 붙어 있는 것이 안쓰러워 보이든 말든... .


'깝치지' 말고 그냥 바라보아주자.

(속어를 사용한 점 양해해주세요. , 그 느낌적인 느낌이 딱 맞는 단어라서요.)





매거진의 이전글 마네킹이야? 허수아비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