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와인 러버를 위해 (2)
지금 당신은 주말에 마실 와인을 고르기 위해 와인샵, 혹은 대형 마트 와인 코너에 서 있다. 레드, 화이트, 스파클링 와인까지, 수백 종이 넘는 다양한 와인들이 도열해 있는 판매대 앞에 서면 어떤 와인을 골라야 할지 난감하다. 레스토랑이나 음식점에서 몇 페이지에 달하는 와인 리스트를 받아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아마 이런 상황은 와인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한 와인 러버들이 처음 맞닥뜨리는 고민일 것이다. 이 단계에서 부담이 생기면 와인에 깊이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만드는 진입장벽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손쉽게 와인을 골라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을 소개하려 한다. 어차피 와인도 하나의 술이요, 음식이기 때문에 간단한 원칙만 기억하면 쉽게 와인과 친해질 수 있다.
1) 스파클링 와인으로 시작하라
와인 하면 보통 레드 와인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떨떠름한 맛에 익숙하지 않은 초심자에게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특히 와인이 익숙하지 않은 친구나 가족과 함께 마실 때는 스파클링 와인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특히 스파클링 와인은 오픈하는 것만으로도 흥을 돋울 수 있어 거부감이 적다. 음용자의 취향을 맞추는 것도 비교적 간단하다. 예를 들어 달콤한 맛을 좋아한다면 이탈리아 모스카토 품종의 약발포 와인을, 드라이한 와인을 선호한다면 스페인 전통 방식 스파클링인 까바를 고르면 무난하다. 모두 마트나 와인샵에서 1-2만 원 대에 손쉽게 구할 수 있어 경제적 부담 또한 적다. ‘펑’ 소리를 내며 기포를 쏟아 내는 스파클링 한 병이 여러분을 더욱 와인과 친숙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2) 기본 품종과 국가, 스타일을 기억하라
세계적으로 약 1만 종 이상의 와인 양조용 포도 품종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모든 품종을 기억할 필요는 없다. 우선 국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품종 몇 가지만 기억하면 소매점이나 음식점에서 와인을 고르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또한 유럽, 특히 프랑스의 경우 품종을 표기하지 않고 생산 지역만 표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경우 해당 지역의 대표적 포도 품종 몇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예. 보르도 레드는 까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 부르고뉴 화이트는 샤르도네 등)
3) 조언자를 적극 활용하라
그러나 이렇게 대략적인 스타일 만으로는 ‘내게 맞는 와인’을 골라내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생산자, 양조 방법, 빈티지 등 다양한 조합에 의해 와인의 성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일 때 까지는 와인 선택에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는데, 그런 시행착오를 줄여 주는 것이 바로 매장 직원들이다. 머뭇거릴 필요는 없다. 그들은 오히려 망설이고 있는 초심자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조건’ 싸고 맛있는 와인’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곤란하다. 이는 소개팅 주선자에게 ‘잘생기고 돈 많고 착한’ 사람을 소개해 달라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추천을 부탁할 때는 다음 세 가지 원칙을 기억하자. ‘어떤 음식과, 어떤 상황에서, 누구와 함께’. 그러면 추천의 범위가 자연스럽게 좁혀진다. 선호하는 품종이나 국가가 있다면 덧붙여도 좋다. 추천받아 마신 와인이 좋았다면 레이블을 스마트폰으로 찍어 둔다. 스마트폰은 언제나 소지하고 있기 때문에 사진을 찍기도, 보여주기도 용이하다. 다음번 와인을 구매할 때 직원에게 찍어 둔 레이블을 보여주며 비슷한 스타일로 추천을 부탁하면 새로운 와인을 비교적 안전하게 구매할 수 있다. 또한 레이블에는 와인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들어있기 때문에 와인 상식을 넓히는 데도 도움이 된다.
1) 적정 온도를 맞춰라
화이트 와인은 차갑게, 레드 와인은 실온에서 마시라는 이야기는 상식으로 통한다. 그런데 실온의 개념에 함정이 있다. 예컨대 실온에서 음용한답시고 30도를 오르내리는 더운 여름에 레드 와인을 그냥 마시게 되면 어떻게 될까? 시큼털털하고 알코올은 도드라지는 맛없는 술과 만나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레드 와인에 적당한 ‘실온’은 보통 섭씨 16-18도 전후를 의미한다. 따라서 한 여름에 실온에 있던 레드 와인은 1시간 30분 정도 냉장실에 넣었다가 마시는 것이 좋다. 가벼운 레드의 경우는 더 낮은 온도에서 음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매년 11월 셋째 주 목요일에 출시되는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는 화이트 와인과 비슷한 12-14도에 마셔야 더 신선하고 매력적인 햇과일 맛을 즐길 수 있다. 대부분의 화이트 와인은 섭씨 4-12도 사이에 마시는데, 냉장고에서 꺼낸 즉시 마셔도 대체로 문제없다. 아이스 버킷으로 칠링을 하면서 마시면 더욱 좋다. 일반적으로 과일 향이 두드러지고 가벼운 화이트(ex. 소비뇽 블랑)는 4도에 가깝게, 오크 숙성하여 풍미가 복합적이고 묵직한 화이트(예. 고급 샤르도네)는 12-14도 전후에 마신다.
2) 음식과 함께 마셔라
와인은 기본적으로 국물과 비슷한 개념이다. 식사할 때 밥 없이 국만 먹으면 허전하듯이, 와인도 적절한 음식과 함께할 때 더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맛을 감별하기 위해 와인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맛있게 즐기기 위해 와인을 마시는 것임을 기억하자. 많은 사람들이 와인 안주로 즐기는 치즈나 카나페 같은 것도 좋지만 다양한 음식과 매칭하다 보면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묵직한 레드 와인에는 쇠고기 같은 붉은 살 육류, 화이트 와인에는 해산물이나 가벼운 샐러드 등의 기본 상식에 맞추어 본다. 더 나아가 참치회와 피노 누아, 삼겹살과 오크 숙성 샤르도네 같이 자신에게 맞는 궁합을 찾아보는 것도 와인을 마시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다.
초기 와인 문화가 형성되던 시기에는 정형화된 와인 매너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예컨대 와인을 받을 때는 잔을 들어서는 안 되고, 와인 잔은 반드시 몸통이 아닌 다리 부분을 잡아야 한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이런 매너는 격식을 중시하는 자리나 고급 레스토랑에는 어울릴지 몰라도,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와인 매너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앞의 예를 그대로 적용하여 생각해 보자. 회식 자리에서 와인을 잘 모르는 상사가 잔을 채워 주는데 매너랍시고 잔을 그냥 바닥에 두면 무례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또한 국빈 만찬 사진에서 그냥 편하게 글라스의 몸통을 잡고 마시는 프랑스 대통령의 모습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굳이 와인 잔 다리를 잡고 마실 필요는 없다는 반증이 아닐까. 물론 특별한 자리 나 비즈니스를 위해 와인 매너를 익혀 두는 것은 좋다. 하지만 평상시에는 내가 편한 대로 와인을 즐기면 된다. 하루의 피로를 풀기 위해, 친한 지인들과 가볍게 한 잔 하는 날에 굳이 각 잡고 힘 줄 필요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