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교환일기

by 윙글

어느 날 옷장 깊숙이 숨겨두었던 일기장을 발견했다.

1999년, 같은 반 친구와 함께 쓴 교환 일기였다.

교환일기니까 서로 며칠 동안 일기를 가지고 있다가 상대방에게 주는 식이었다.

이것은 우리가 쓴 두 번째 일기장이었다.

처음 일기장은 친구가, 두 번째 일기장은 내가 가지기로 했던가 보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조금만 봐야지.

낡은 표지를 들춰보았다.

빼곡하게 적힌 글자들 사이로 잡지에서 오린 사진과 직접 그린 그림, 심지어 납작한 단풍잎까지 붙어있었다.

단풍잎이라니...

낭만 소녀였네!

처음엔 그림과 사진만 훑어보고 덮을 심산이었다.


30분 후...

나는 그 자리에 선채로 글자 하나하나를 곱씹고 있었다.

이때 이랬지! 내가 이런 말을 했다고?

오글거리고, 우습고, 부끄럽고, 귀엽고...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걸 왜 이제야 읽어봤을까 싶을 만큼.


암울하기 그지없는 10대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래서 남들도 나를 그렇게 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나는 행복한 학생으로 보이고 있었다.

그 점이 좋았다.

적어도 친구의, 또는 친구들의 기억에 나는 우울하고 칙칙하고 어두운 아이가 아니었나 보다.

마치 과거로 돌아가 나의 인생을 바꾸고 돌아온 기분도 들었다.

집에서부터 나를 따라다닌 '가난이'와 '우울이'가 남들 눈에 보이지 않았다는 게 좋았다.


그리고 줄줄이 소시지처럼 딸려 나오는 추억들이 방울방울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 글은 이런 이야기다.

26년 만에 발견한 교환일기가 대차게 낚아 올린 추억을 하나로 엮은 것.

그 안에 눈부시고 치열했던 우리들의 이야기.

1999년, 학교를 사랑해 마지않던 17살 소녀의 이야기다.


커버 사진 출처: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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