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애가 얼마나 공부를 못했으면 공고를 갔대?"
택시기사 아저씨의 말이었다.
교복을 보고 학교가 어디냐 여쭤보시길래 알려드린 것인데, 대답은 이렇게나 무례하다.
그런 시대였다.
지금도 그런 인식이 있지만, 그때는 더더욱 그랬다.
공부 못 하면 가는 곳. 인문계 못 가는 아이들이 가는 곳.
거기다 공고는 남자, 상고는 여자가 가는 곳인데 여자가 공고에 간다고?
어떤 애인지 알만하구나... 하는 그런 시선이었다.
억울했다.
"아니에요! 50명이 넘는 반에서 10등 안에 들었다고요! 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실업계 학교에 갔어요!"
이렇게 이마에 써붙이고 다닐 수는 없지 않은가.
절대! 결단코! 나는 공부를 못해서 실업계 학교를 온 것이 아니었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디자인을 하고 싶었다.
참 행복한 일이다. 일찍 꿈을 세운 것은.
그리고 불행한 일이다.
가난한 집에서 꿈을 꾼다는 것은.
영어 수학 학원도 다닐 수 없는 형편에 미술학원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예술고를 선망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인문계에 가자니, 언니처럼 공부할 자신도 없었고 진학을 한다 하더라도 입시 미술학원을 보내 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인문계에서 상위권에 들어갈 만큼 공부를 사랑한 것도 아니었다.
언니처럼 새벽에 눈 감은 채 밥을 먹고, 도시락 2개를 들고 학교에 가고, 밤 11시가 되어서야 집에 오는, 그런 학교 생활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버틸 수 있을까?
하고 싶은 것은 제쳐두고 억지로 교실에 앉아 공부를 하면 성적이 높게 나올까?
가난은 공부로부터 도망치기 좋은 핑계가 되어 주었다.
그런 와중에 알게 됐다.
디자인과가 있는 고등학교가 있단다. 실업계 학교에.
그렇다면, 고등학교에서라도 디자인을 배우자.
그렇게 도출한 결과였다.
그럼 나는 어쩌다 상고가 아닌 공고에 가게 된 걸까?
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딱 두 개였다.
여자상업고등학교와 남녀공학 공업고등학교.
둘 다 디자인과가 있었다.
나는 그 여자상고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더군다나 공고는 신설 학교였고, 주변에 성적 좋은 애들이 여럿 지원을 했더랬다.
커트라인 높다는 평이 있었고 담임선생님도 상담 때 그렇게 말씀하셨다.
'경쟁률이 센 곳이구나. 실업계라고 나쁜 것은 아니야. 옛날과 달라지고 있구나.'
새로운 기류가 생겨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뭔가 지금까지의 실업계와는 전혀 다른, 실력 있고 열정 있는 아이들이 가는 학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선택한 공고였다.
그리고 나는 학교에 입학을 하고 나서야 알게 됐다.
야심 차게 지원한 학교는 왜 경쟁률 이야기가 나온 건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낮은 성적의 아이들도 들어와 있었다.
복도 가득한 담배연기와 일진처럼 보이는 아이들.
생각보다 낮은 커트라인, 생각보다 더 함부로 대하는 사회의 시선.
'잘 못 왔나?'
내가 괴로워하든 말든 학교 수업은 차근차근 진행됐다.
그리고 드디어 디자인 전공 수업 시간.
그저 오! 와! 를 연발하며 배우고 연습하고 채워갔다.
하루, 이틀... 시간이 갈수록 몸속에서 뭔가 간질거렸다.
이걸 어쩌지?????
어떻게 하지???
안달복달, 나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숨이 턱 막혔다.
행복해서.
수업시간에 그림을 그려도 된다고?
내가 생각한 대로 디자인을 해도 된다고?
심지어 디자인 실기 시간이 국영수 교과 과목보다 더 길다고?
나는 열정으로 불타고 있었다.
디자인 수업에.
숙제는 새벽 2시가 되든, 3시가 되든 영혼을 갈아 넣어 완성해 갔다.
방학숙제도 몰아서 하지 않고 하루하루 날마다 그렸다.
내가 완성한 작품이 복도에 붙기 시작했다.
커트라인 따위 낮으면 뭐 어때!
남들이 함부로 대하든지 말든지.
난 수업시간이 이렇게 기다려지는 데!
택시기사의 시선 따위 하수구 또랑으로 던져 버릴 수 있을 만큼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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