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의 문제는 쉽게 지나가지 않았다.
그 후로도 담임선생님의 역사 수업은 계속됐고 그때마다 교실에는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한반도 사건 이 외에도 아이들은 선생님에 대한 불만이 한 장 한 장 쌓여가고 있었다.
선생님은 권위적인 분이셨고 아이들과 소통하는데 다소 어려움이 있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한 남학생이 수업시간에 잘못을 했던 것 같다.
정확한 원인은 기억나지 않지만, 훈계를 하시다 화가 난 담임선생님은 남학생이 앉아 있던 뒷자리까지 걸어가셨다.
마주 본 선생님과 학생.
일촉즉발의 상황.
선생님은 학생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그 순간, 학생은 날아오는 선생님의 손을 붙잡았다.
눈치가 초고속이었던 남학생이었다.( ‘4. 짐승남들의 서열정리’ 참고)
남학생은 선생님을 똑바로 보면서 눌러 참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뭔 데?”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상대는 선생님이다. 어른이고.
그때까지 나는 감히 반항한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존재였다.
설사 그것이 부당한 지시라고 해도 무조건 따라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이 깊이 박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3살 터울 언니의 고등학교만 해도 무시무시한 체벌이 행해졌기 때문이다.
남자 선생님이 여학생의 뺨을 수차례 때려 벽에 닿을 때까지 밀려나도 단 한마디도 반항할 수 없는 그런 세상이었다.
그것을 멈추게 한 것이 휴대폰의 보급이었다.
휴대폰으로 찍은 폭력 영상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아이들에게 간접적으로 듣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전혀 달랐겠지.
충격의 영상들은 체벌이 금지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영상이 알려지기 전 이미 아이들의 마음속에서는 저항의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 같다.
불합리하고 무자비한 폭력을 견디는 것에도 한계가 있으니까.
나처럼 순종적인 아이들은 저항하는 그 움직임이 신기하고 충격적이고 겁이 났다.
어른이 혼내면 사죄하고, 어른이 때리면 맞는 것이 내가 알아온 세상이었다.
저래도 되는 것일까?
때리는 손을 잡는 것도, 반말로 받아치는 것도 내게는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다.
맞는 것이 싫어 손을 붙잡을 수는 있다고 치자.
아무리 잘못된 지시여도 학생이 선생님에게, 아이가 어른에게 반말을 해도 되는 것일까?
반항을 하더라도 존댓말로 할 수는 없었을까?
어떤 상황에서까지 예의를 지켜야 하는 것일까?
다행히 그날 더 이상의 반항이나 폭력 없이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인간적으로 선생님도 무섭지 않으셨을까...?
선생님이 받았을 충격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일 이후로 담임선생님은 우리 반 교실에 들어오지 않으셨다.
서로에게 불편한 시간이 흘렀다.
결국, 우리 반 담임선생님은 전공과목(디자인) 선생님으로 교체되었다.
살다 살다 학생들과의 트러블로 담임선생님이 교체된 상황을 보게 되다니…
바뀐 담임선생님, 달라진 교권.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아이들은 저항하고 있었고 교권은 달라지고 있었다.
우리는 그 시작점에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