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바다가 내 기억 속
최초의 바다였다.

by 윙글

1학년.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한 무리 안에 속해 있었다.


친해진 과정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그 무리와 함께 한 추억들만 떠오를 뿐이다.

함께 햄버거 가게를 가고, 노래방을 가고,

친구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타이타닉 비디오를 함께 봤다.


그 친구들과 함께 할 때면 신이 났다.

처음 느껴보는 설렘이었다.

그들을 통해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느끼고, 즐기게 되었다.

나는 어느새 너희들에게 속해 있는 것이 기꺼웠다.


그러던 어느 날, 여름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한 친구가 섬으로 여행을 가자는 제안을 했다.

외할머니가 섬에 사신단다.

고속버스를 타고 선착장까지 가서, 배를 타고 20~30분은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한 번도 친구들끼리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다.

당일치기조차도.

심지어 바다를 본 기억도 없었다.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어렸을 때 한번 가본 것을 제외하고는 바다로 가족여행을 떠난 적이 없었으니까.


한창 으쌰으쌰 싸돌아다니기 좋아하던 우리들은 같은 마음이었다.

그대로 진행시켜!


여름방학, 우리는 그 섬으로 여행을 갔다.

주최자 학생.

인솔자 학생.

책임자 학생.

이런 여행은 나도 처음이었다.

부모가 된 지금 생각해 보니 아주 용감무쌍했구나.


터미널에 모인 우리들은 같은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부푼 마음을 안고 한참을 달려, 선착장에 도착할 무렵이었다.

바다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나를 보고 친구들은 말했다.

"쟤 왜 저러냐? 바다 처음 보냐?"

"응... 처음 봐."

"잉?"


그래, 너희들과 함께 본 그 바다가 내 기억 속 최초의 바다였다.

내 삶에서 많은 처음을 너희들과 함께 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깊이 새겨진 건, 그날의 바다가 가장 크다.

내 안에 새기기에는 너무 커서, 그 순간에 흠뻑 빠져버릴 만큼.


그 나이까지 바다 한번 보러 간 적 없다는 사실도 숨기지 않고 말할 수 있었다.

너희들이니까.


바다뿐만이 아니었다.

배를 타는 것도 처음이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배 위에서 맞던 시원한 바닷바람이.


머리카락을 산발마녀로 만들어 준 바닷바람을 맞으며 섬에 도착해 할머니댁으로 향했다.

할머니 댁은 구멍이 숭숭 나있는 돌을 쌓아 만든 낮은 담장이 둘러져 있었다.

제주도를 연상하게 하는 집이었다.

지금이라면 바람이 많이 분다는 것을 알아차렸겠지만 그때 내 머릿속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신났다.


혈기왕성한 우리는 여독 따위 느낄 새도 없이 분명 잘 뛰어놀았겠지만, 뭘 하고 놀았는지는 기억이 없다.

그저 딱 하나, 강렬했던 기억 하나만 남아있다.

텐트를 치고 야외에서 자보겠다고 호기롭게 바닷가에 자리를 잡았던 일이다.


아직 해가 지지 않은 늦은 오후.

텐트를 친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후드득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텐트 안까지 들어오지는 않으니 기다려보자.


바람이 분다.

우리가 텐트 안에 앉아 있는데 날아가기라도 하겠냐? 기다려 보자.


날아가겠는데?

이러다 이상한 나라의 공고생이 될 것 같다.


바람이! 바람이! 이렇게 불 수가 있는 건가?

이건 분명 태풍이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우리들은 몰아치는 바람과 비를 따갑게 맞으며 텐트를 접었다.

겨우겨우 접은 텐트를 가지고 젖은 생쥐 꼴로 터벅터벅 언덕을 올라 할머니 댁에 도착하니...

짜잔~

구름 사이로 해가 나온다.


이럴 수가 있냐고요...

그 고생을 하고 텐트를 접었는데! 이게 뭐야!


알고 보니 섬의 소나기는 태풍급으로 온다고 했던가...

우리는 비에 흠뻑 젖은 채로 줄줄이 서서 바닷가를 바라보았다.


또 내려갈래?

...... 아니.

그래.

그 날밤 우리는 할머니 댁에서 잠을 잤다.



이 여행에 텐트를 가져온 사람은 너였다.

이것저것 설치하느라 정신없는 틈에 모르는 섬사람들이 오고 가더니 텐트 한쪽이 찢어져 있었다.

오며 가며 이상한 눈빛을 보내던 낯선 아이들 짓이라고만 예상할 뿐 범인은 찾지 못했다.


텐트 주인이었던 너는 아빠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난감해하고 있었다.

우리는 너를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방학 끝나면 꼭, 살아 돌아오길 바랄 뿐.



커버 사진 출처: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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