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교시간.
학교 정문 앞 버스 정류장은 우르르 빠져나오는 학생들로 가득하다.
인도를 꽉 채운 머릿수를 보니 버스가 몇 대나 지나가야 내 차례가 올지 모르겠다.
기다리기 싫어 차라리 한 코스 전에 있는 정류장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여기도 사람이 많네.
오늘은 한 정류장만 더 위로 올라가자.
한 정류장만 더.
하나만 더...
한 시간 동안 서서 갈 엄두가 나지 않았던 나는 승객이 적은 버스에 타기 위해 한 개씩, 한 개씩 정류장을 거슬러 올라갔다.
결국 한 학기가 지나갈 무렵, 나는 버스 종점에 다다랐다.
진짜, 정말로, 날마다 종점에서 버스기사 아저씨와 함께 출발했다.
늦은 오후 후덥지근한 버스에 오르는 기사아저씨의 모습도, 노을을 등진 버스 종점의 풍경도 차츰 친근해졌다.
그렇게 나는 적응하기 시작했다.
체육수업을 앞둔 쉬는 시간.
교복치마를 입고 있는 채로 체육복 바지에 발을 끼워 넣었다.
바지를 끌어올려 입은 후 치마를 내린다.
이렇게 한 교실에서 남학생과 여학생이 같이 체육복을 갈아입는다.
처음부터 이러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체육복을 갈아입기 위해 25명 남짓 되는 여학생들이 한 번에 화장실로 몰려갔다.
사람은 많고 공간은 한정돼 있고... 쉬는 시간이 부족했다.
지금은 탈의실이 있는 학교도 많다던데 그때는 어쩌라고 아무 대비도 없었는지 모르겠다.
신학기, 아이들도 초면인데 서로 한 공간에서 옷을 갈아입을 만큼 낯짝이 두껍기는 힘들다.
한두 번도 아니고 반복되는 불편함을 참다못한 누군가가 시작했겠지.
바지라도 교실에서 갈아입자.
바지만 교실에서 후다닥 갈아입고 화장실로 가니 옷 갈아입는 시간이 훨씬 줄어들었다.
남학생은 반대로 상의를 교실에서 갈아입고 화장실로 향했다.
처음에야 어렵지 그 뒤로는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는 커다란 스탠드 TV거치대 뒤에 숨어서 바지를 갈아입는 남학생들도 많았다.
눈에만 안 보이면 장땡. 편리함이 최고.
이젠 서로 거리낌이 없었다.
남매와 친구 사이 그 어디쯤?
그렇게 우리는 적응하기 시작했다.
변화는 또 있었다.
서로 친해지고 나니 슬슬 시작되는 남학생들의 짓궂은 장난.
몇 번인가 짓궂은 장난에 울음을 터뜨리는 여학생도 있었다.
여자애들이 울면 남자애들은 눈치를 본다.
하지만 그것도 그때뿐.
몇 시간만 지나면 또 시작이다.
짓궂은 장난에 우는 여자애와 장난 마려운 남자애.
누가 이길까?
변하는 것은 여자애들이었다.
멈추지 않는 남학생들의 장난에 이골이 난 것이다.
어느 날엔가, 책 몇 권을 품에 안고 종종걸음을 걷던 여학생.
어디를 어떻게 발을 걸면 그렇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여학생은 허공에 붕 떴다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쿵!!!
1초. 2초. 3초.
그대로 정지.
울까...?
눈치를 살핀다.
그런데 웬걸.
여학생은 아파서 인상을 쓰면서도 웃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장난을 친 남학생 무리도 깔깔거리고 웃는다.
그리고 추격전이 시작된다.
여학생들은 강철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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