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1학기초. 우리 반은 유별났다.
담임선생님 교체라는 유례없는 사건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 사건의 발단을 들여다보자.
교실 뒤에는 커다란 게시판이 있다. 그곳에는 공지사항이나 아이들의 작품, 지켜야 하는 규율 같은 것들이 붙어 있곤 했다.
그때는 환경미화심사가 중요하게 여겨졌고 그 게시판이 큰 몫을 차지했다.
특히 디자인과였던 우리 반은 심미적인 부분에서 뒤질 수 없다는 자존심 때문에 더욱 심혈을 기울여 꾸미곤 했다.
그런데 너무 심혈을 기울였던 탓일까?
게시판에 붙여 놓은 포스터 하나가 문제를 일으켰다.
4절지 사이즈의 종이에 한반도 지도를 그려 넣었는데 남북을 한 가지 색으로 칠해 놓았다. 아마도 통일과 관련된 포스터였던 것 같다.
그때는 이미 반공교육이 아닌 통일 교육으로 바뀐 지 오래된 시기였기에 초록색이나 파란색으로 그려진 한반도 그림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우리들에게는.
문제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발생했다.
바로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이었다.
남북한을 한 가지 색으로 칠한 것이 잘못됐다고 지적하셨다.
선생님은 남한을 파란색, 북한을 빨간색으로 다시 칠하라고 지시하셨다.
우리는 귀를 의심했다.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었다.
심지어 담임선생님은 역사(또는 사회) 선생님이었다.
실장(반장)이 일어나 조심스럽게 질문을 드리기 시작했다.
왜 바꿔야 하나요? 왜 다른 색으로 칠해야 하나요? 왜…? 질문은 길어졌다.
반 아이들은 아무도 실장을 제지하지 않았고 부실장은 중간에 설명을 덧붙이기까지 했다. 이미 반 아이들은 실장과 한 마음이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대화가 길어지고서야 깨달으셨던 것 같다. 이것이 실장 한 명과의 대화가 아니라 반 아이들 전체와의 대화였다는 것을.
쉽게 수긍하지도, 지시에 따르지도 않는 아이들을 보며 선생님은 점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셨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대화는 감정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이미 선생님과 학생의 예의 있는 대화가 아니었다.
감정싸움으로 변질된 상황에서 아이들은 부당함과 억울함을 느꼈다.
선생님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이 사건은 학교 전체에 퍼졌다.
선생님들은 별 말이 없으셨다.
딱 한 분, 또 다른 사회 선생님만이 우리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셨다. 설명을 들은 선생님은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셨다.
고민하던 선생님은 아이들을 다독이는 말과 선생님께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셨던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에 우리들의 질문에 답을 해 주셨다.
“선생님, 북한을 꼭 빨간색으로 칠해야 하는 건가요?”
“아니, 한 가지 색으로 한반도를 칠한 너희들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 없다. 잘했다.”
그제야 우리는 응어리진 억울함이 씻겨 나가는 듯했다.
어른이, 그것도 선생님이 인정해 주셨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이때의 실장이 너였다.
나와 교환일기를 쓰던.
물론 이때의 너는 나와 말도 섞지 않을 때지만.
선생님께 조목조목 질문하는 네가, 찌그러지지 않고 우리들을 대변하는 네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