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남들의 서열정리

by 윙글

남학생들의 몸싸움이 일어났다.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열심히들 싸운다.


나는 궁금했다.

왜 자꾸 싸우는 것인지. 그것도 교실 안에서…

우당탕 부딪혀 넘어지는 소리와 가차 없이 휘두르는 주먹을 보면 솔직히 무서웠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누구라도 빨리 끝내주기를 바랐다.

싸움을 보는 것이 싫었다. 아니, 그 공간에 함께 있는 자체가 무서웠다.


어느 날인가 왜소한 남학생과 1년 꿇은 복학생과의 싸움이 일어났다.

나중에 알았지만 복학생의 부당한 요구가 싸움의 원인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왜소한 남학생이 다소 억울하게 맞고 있었다.

지켜보는 친구들 중 도와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래도 한 살 많은 복학생과 얽히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았을까?


그러던 중 반에서 가장 무섭게 생긴, 내 기준에 가장 나쁜 짓을 할 것만 같은 인상의 남학생이 일어나더니 순식간에 왜소한 남학생의 얼굴을 풀 스윙으로 때렸다.


“우당탕탕!”


그렇게 싸움은 끝이 났다.

왜소한 남학생은 교실 구석 바닥에 쓰러졌고, 복학생은 그대로 교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어렸던 나는 내심 무섭게 생긴 남학생을 욕했다. 억울하게 당하는 약자를 때린 것으로 보였으니까.


하지만 얼마 후, 친구들과의 대화로 알게 되었다.

무섭게 생긴 남학생은 눈치가 말도 못 하게 빠르고 실행도 초고속인 거라고.

형을 때리면 정의로워 보이겠지만 싸움이 커질 뿐이고, 왜소한 남학생을 때리면 싸움이 끝난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소한 친구가 더 맞을 일도 없고…

앞으로 저 눈치 초고속 남학생은 특히 조심해야겠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눈치 없는 나에게 그 말이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그리고 이제는 알고 있다. 그 싸움의 이유가 무엇인지.

TV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을 보면 무리생활을 하는 수컷들이 서열정리를 위해 치열한 싸움을 한다.

먹이 경쟁과 번식의 기회를 갖기 위함이다.

당연히 학교에서 먹이 경쟁이나 번식을 위한 싸움은 필요 없다.

하지만 아직 인간의 DNA에는 그 본능이 남아있나 보다.

그들은 새로운 무리를 이루는 시기 즉, 신학기를 시작하면서 서열정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여기, 교실 안에서.


남학생들의 서열정리는 비단 교실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등하굣길 시내버스에서도 일어난다.

학기 초, 여러 학교를 통과하는 시내버스 특성상 서로 다른 교복이 섞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버스 안에서 느껴지는 학교 간 신경전은 생각보다 살벌했다. 으르렁거리는 남학생들의 분위기는 언제라도 폭발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학교 안에서나 밖에서나 남학생들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세렝게티였다.


심지어 20살 성인이 된 이후에도 대학생이 된 남자들의 몸싸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는데 장소는 술집이었다. 아무래도 술이 잠재된 본능을 깨우는 것이 아닐까?


어쨌든 이 모든 싸움의 공통점은 바로 신학기에 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런 시한폭탄 같은 상황도 끝이 있다는 것이다.

몇 달만 지나면 남학생들은 언제 싸웠냐는 듯이 짓궂은 장난을 치고 놀았다.

마치 야생의 소년 사자들처럼.

나는 그것이 참 신기했다.


커버 사진 출처: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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