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면 언니와 함께 자주 보던 것이 있다.
만화책.
일본 순정만화를 십 수권씩 빌려와 쌓아 놓고는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읽고는 했다.
만화책에 나오는 고등학교는 낭만적이었다.
동경할 만한 멋진 선배도 나오고, 때가 되면 축제도 한다.
짝사랑을 하거나 애끓는 고백 끝에 연애도 한다.
물론 권모술수와 집단 괴롭힘, 음모와 배신도 난무하지만 그 마저도 낭만적으로 보였다.
사춘기 소녀에게 만화책 속 학교는 낭만 그 자체였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내가 그 만화책 속으로 들어와 있다.
운동장에서 교복 입은 남자애들이 농구를 한다.
제법 날렵한 움직임과 정확한 슛.
만화 슬램덩크가 떠오른다.
여자애들은 삼삼오오 모여 구령대 옆에 앉아 그들을 구경한다.
친한 남자애를 응원하기도 하고 골을 넣으면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오~~~"
"와~~~~"
골인한 남자애는 여자애들을 향해 찡긋, 윙크와 손짓 경례를 날린다.
예상치 못한 능청스러운 팬서비스에 여학생들은 '우엑!' 헛구역질을 한다.
얼마나 진심 어린 응원인가.
농구하는 남학생과 응원하는 여학생.
낭만적이야...
선배들은 또 어떠한가.
자고로 여자들은 밴드 하는 남자를 조심하라고 하더니 왜 그런지 알 것만 같았다.
기타를 연주하고 드럼을 치는 오빠들이란...!
"선배님, 너무 멋있었어요...!"
선배를 보는 나와 내 친구의 눈은 이미 하트모양으로 뿅뿅 바뀌어 있었다.
얼음처럼 굳은 채 당황한 선배는 "어, 어..." 얼버무리더니 도망친다.
수줍은 선배와 그런 모습마저 귀여워 눈을 못 떼는 여후배들.
역시 밴드 오빠는 위험하다.
어느 날은 학교 안에서 연극을 보기도 했다.
학생들이 활동하는 동아리 행사 중 하나였다.
시청각실 의자에 앉아 공연을 보는데 퀄리티가 생각보다 좋았다.
마치 소극장에 온 것 같은 시설과 연기.
한참을 빠져들어 관람했다.
그리고, 그 틈에 있는 중학교 동창 내 친구.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었다.
'여러분! 저 연기자가 바로 제 친구예요!'
모든 것들이 낭만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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