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의 낭만에 대해 말하려면 이것을 빠트릴 수 없다.
바로 축제.
축제야 말로 고교 낭만의 꽃이며 동경의 대상이었고 나의 로망이었다.
만화책 속에서는 축제준비를 할 때도 축제 당일에도 재미난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그때에만 누릴 수 있는 무대가 아닐까?
일기장을 보니 우리는 축제날 댄스와 노래뿐만이 아니라 시를 지어 전시도 하고, 패션쇼도 했다고 한다.
강당에 있는 무대에서 커버댄스를 추던 댄스팀 공연은 아마도 HOT나 젝스키스의 노래가 아니었을까?
축제 공연의 남녀 진행자는 1학년 우리 반이었다.
그중 한 명이 이벤트를 준비했는데, 댄스팀 공연 중간에 카메오로 끼어들어가 함께 춤을 추고 진행석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것도 마냥 재미있고 설렜다.
어느덧 2학년이 되고 다시 축제가 열릴 무렵, 우리는 교환일기 2권을 쓰고 있었나 보다.
일기장에 1999년 축제 이야기가 있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나의 가물거리는 기억에만 의존해 써 내려갔지만, 여기서부터는 일기장의 도움을 받으며 써 볼까 한다.
1999년 10월 29일
오늘은 좀 피곤한 날이야. 축제였잖아. 줄다리기 때문에 팔을 올리기만 해도 너무 아프다.
그래도 재미있었어. 작년보다는 훨씬 좋더라. 그치?
근데 정말 디자인과가 없으면 학교가 얼마나 삭막할까? 댄스, 연극, 노래, 시... 패션쇼까지...
우리 과는 왜 이렇게 잘하는 게 많은 건지...
... 중략...
노래 정말 잘 부르더라. 원래 잘 불렀지만.
근데, 앞에 몇 소절 부르고 나니까 "으~~"소리하고, "와~~"소리가 교차하는 거 들었어?
2학년 디자인과 여자애들은 "으~~", 1학년 여학생들은 "와~~"하고 소리치더라.
이제 너도 한 인기 하겠네. 혹시 유명해지더라도 나 보면 모른척해.(...?)
너 좋아한다던 후배는 까무러쳤겠다.
... 중략...
나는 늘 축제의 관객에 머물렀지만 너는 아니었다.
너는 스탠딩 마이크를 붙잡고 넓은 무대 한가운데 홀로 서 있었다.
노래는 조장혁의 'CHANGE'.
강당 바닥에 앉아 무대 위의 너를 올려다보던 그날이 떠올랐다.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기분은 어떨까?
그 순간만큼은 너로 인해 마치 내가 연예인이라도 알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너는 교실에서도 가끔 노래를 불렀었다.
그래서 축제 무대에 선다고 했을 때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전공과목 선생님 한분이 너를 지목해 노래를 시키면 너는 사양 않고 앞에 나가 노래를 불렀다.
처음 불렀던 노래는 윤도현의 '너를 보내고'였다.
나는 그 노래를 그날 너를 통해 처음 들었다.
그리고 너의 노래실력도 그때서야 처음 알았다.
성악 전공으로 예술고를 지원했었다는 너의 얘기를 흘려들었었는데, 성악을 전공하면 가요도 저렇게 잘 부른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아무튼 내가 그때까지 들은 친구들의 노래를 전부 오징어로 만들어버린 그날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편안한 음정은 기본이고 부드러운 목소리와 멜로디가 퍽 어울렸다.
작은 교실에서 50여 명 남짓한 아이들만 듣기에는 아깝다고 느낄 정도로 마음을 울리는 노래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윤도현의 원곡보다 네가 부른 그 노래의 감성이 더 좋았다.
그 후로도 주욱.
축제 무대에 서고 난 후 너를 동경하는 여자 후배들이 생겨났다.
1학년때 내가 밴드 선배를 동경했던 것처럼.
이제는 우리가 선배가 되었구나.
누군가가 동경하는.
후배들의 동경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너는, 아직 어딘가 부족하고 어딘가 괴상한 친구였다.
그리고 우리는 교환일기를 착실히 써 내려갔다.
그 교환일기 속에는 축제날의 기억과 감상이 남았고,
나에게 축제의 낭만은 너의 노래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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