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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memike Sep 16. 2020

집에 관하여

열두번째 이야기


건축을 배우는 가장 쉬운 방법은 직접 설계를 해보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건축 학교에서 프로젝트를 수업의 일환으로 진행한다. 처음 설계를 하는 학생에게 대형 병원, 박물관, 국가 시설, 오피스를 지어 보라고 할 수는 없다. 물론 세심하게 접근한다면 오래 걸리겠지만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한 이유로 ‘건축학도’라 일컫는 사람들은 주택, 또는 집을 첫 프로젝트로 시작한다. 



집을 첫번째 프로젝트로 삼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집은 건축에 있어서 원형질에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한 집은 아마 우리가 가장 익숙한 건축의 형태이기도 하다. 집마다 형태는 다를 수 있지만, 집에는 거실, 침실, 부엌, 화장실, 서재 등의 여러 방이 있다. 경우에 따라 서로 다른 용도로 분리될 방이 하나의 방으로 통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원룸의 경우 거실, 침실, 부엌이 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집이 다른 건축 형태의 원형질인 이유는 스케일(scale) 때문이다. 거실이 커지면 마당이 되고, 운동장이나 박물관이 된다. 4평 남짓 되던 집의 서재가 커지면 도서관이 된다. 결국 집에서 이루어지는 행위가 어떠한 scale의 공간에서 다른 형태로 발생하느냐 생각하는 것이 건축의 시작이다. 



집의 기능이라 하면 ‘보호’가 가장 큰 기능일 것이다. 태초의 집은 동굴이었을 것이라고 고고학자들은 말한다. 동물이나 곤충에게 물리면 금방 죽는게 초기 인류였다. 밤이 되어 시야가 확보가 안 되고, 비나 태풍이 오면 속수무책이었다. 집은 나약한 인간을 통제 불가능의 자연 환경으로부터 지켜주는 안식처였다. 현대로 와서는 이에 더불어 집은 인간 관계로부터 개인 또는 가정을 지켜주는 공간이 되었다. 무서운 직장 상사로부터, 불편한 관계를 가진 사람으로부터, 힘든 하루로부터, 집은 잠시나마 나를 지켜주는 공간이다. 물론 재택 근무와 가정 불화 등 다양한 형태의 관계가 유일한 피난처였던 집으로 침투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home으로서의 집이 필요하다


영어로 집을 나타내는 단어는 house와 home이다. 전자는 물리적 주거 공간을, 후자는 이에 심리적 안정감을 포함하는 공간을 뜻한다. 꼬르뷔지에에게 필요했던 전부는 4평 남짓의 집이었다. 크진 않아도 그를 온전하게 하는 공간. 이는 그곳이 home으로서의 집이었기 때문이다. 물리적, 경제적 여건으로 주택 문제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집은 다시금 질문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나는 어디에 살고 있는가. 혹시 불편하지는 않은가. 집이 작음을 탓하면 안 된다. 작지만 편안한 공간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불필요한지 고민해야 한다. 크기와 상관 없이 나에게 좋은 공간이 무엇인가 생각해야 한다. 



좋은 건축은 집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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