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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memike Sep 16. 2020

좋은 공간에 관하여

열다섯번째 이야기

건축을 보며 치유를 받거나 감동한 경험도 있습니까



건축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건 교육을 받았다는 이야기에요. 

파르테논에 올라가 눈물이 났다면 책을 많이 읽고 교육을 받은거지 

그냥 보고 눈물을 흘릴 수 없어요.



「JOBS ARCHITECT 건축가 : 빛과 선으로 삶을 그리는 사람」 최문규의 말 중에서…







건축은 공간을 다루는 일입니다. 좋은 공간, 좋은 건축. 그 누구도 섣불리 대답할 수 없는 말입니다. 좋은 공간과 좋은 건축은 같은 것인가. 이 질문부터 제 짧은 견문으로는 답할 수 없습니다. 학업으로 배운 건축이 지금까지는 재밌어서 항상 주변을 두리번거립니다. 이 건물은 입면이 어떻고, 저 건물은 평면 구성이 어떻고, 또 이곳은 조경 계획이 어떠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설계를 할 때는 이게 맞니 아니니 하면서 골머리를 앓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이야기하고 상상해 본 공간이 좋은 공간인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듭니다.



내게 좋은 공간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말이 길어집니다. 건축을 공부한 적이 있기에 입면, 공간 구성, 조경, 도시적 맥락(context) 등에 대해 얘기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건축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대답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좋은데 이유가 있냐면서 말입니다.



분명 좋다 나쁘다 모두 사람에 따라, 시간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말입니다. 공간을 점유할 때 건축적 지식은 불필요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간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좋은 공간은 요소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만약 공간이 요소로 나뉜다면, 누구나 좋은 요소만 골라 좋은 공간만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용산 아모레 퍼시픽 사옥의 공중정원


하지만 좋은 공간의 공통적인 속성에 대해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첫째로, 좋은 공간은 필히 사람에 대한 생각을 담습니다. 집, 회사, 학교, 식당. 우리가 살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입니다. 집은 태생적으로 외부로부터 사람을 지키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비와 눈, 추위나 더위로부터, 인간을 위협하는 동물로부터,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모진 사회로부터 사람을 지켜주는 공간이 집입니다. 때문에 집은 밖에서 들어왔을 때 편안해야 합니다. 회사는 일을 하는 공간이며, 보통 나와 가족뿐 아니라 타인과 같이 생활을 하는 공간입니다. 좋은 사무 공간은 일하기 좋게 충분히 공적이며 충분히 사적이기도 합니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시대의 가치를 알려주고 사회화가 진행되는 공간입니다. 여타 다른 공간도 그곳이 왜 지어졌는지에 대한 각각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들은 모두 사람의 삶에 관한 것이고, 좋은 공간은 그곳이 만들어진 이유를 가능케 하는 공간입니다.



두번째, 좋은 공간을 관계의 가능성을 담습니다. 공간은 경계를 갖습니다. 경계를 기점으로 내외부가 나뉩니다. 이로 인해 외부와 공간 사이의 관계, 공간 내부에서의 관계가 생깁니다. 전자는 맥락으로서 작용하여 주변과의 조화를 이룹니다, 무엇이 어울리느냐는 건축가나 건축주가 아닌 그 공간을 자주 오가는 사람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느낄 것입니다. 후자는 내부를 이용하는 사람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공간은 말 그대로 비어 있기 때문에 그 공간에서 사람이 무엇을 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건축가가 보통 그 공간에서 어떤 행위가 일어날지 상상을 합니다. 하지만 좋은 공간은 결국 그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이 누구도 생각치 못한 더 좋은 방법으로 점유하기 마련입니다.



세번째, 좋은 공간은 시간을 담습니다. 공간에서 시간이 느껴진다 함은 삶의 흔적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집 베란다에 빨래가 걸리고, 햇빛이 그 빨래 위로 쏟아지는 시간이 있습니다. 학생의 책상 위에 여러 책이 널브러져 있고, 풀다 만 문제 위에 펜이 놓여 있는 순간이 있습니다. 오래된 식당을 가보면 마루 한쪽이 움푹 들어가 있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사람이 그 공간을 이용한 흔적입니다. 닳고 패인 흔적은 그만큼 그 공간을 많이 이용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실 그런 흔적들이 그 공간이 좋은 공간임을 그 어떤 미사여구보다 잘 설명해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말을 길게 했습니다. 

아직도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듯합니다. 

아직 생각보다 느낌이 앞서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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