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amemike Nov 02. 2020

기억과 망각

서른번째 이야기


기억

사물이나 사상(事象)에 대한 정보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정신 기능.



기억의 과정은 입력(input)으로 시작하여 출력(output)으로 끝난다. 기억은 학습의 기본 과정으로서 작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21세기를 이끌어갈 산업으로 꼽히는 AI는 기억과 학습 과정 연구에 많은 투자를 한다. 사실 나는 내 뇌가, 혹은 마음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AI는 나의 선택과 반응을 나보다 더 잘 알 수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이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뇌를 어떤 식으로 이해하는지는 더 궁금하다. 그걸 알면 나도 내 뇌를 좀 더 잘 쓸 수 있을텐데. 



우선 우리 인류는 사실 ‘기계적 알고리즘’일 뿐이라는 유발 하라리의 입장을 빌려 생각해보자. 어떠한 기억이 데이터로 우리 몸에 입력되면, 어느 순간 그걸 상기(recall)해내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 뉴런의 시냅스 간에 특정한 화학 작용이 발생하여 특정한 기억을 불러오는 것이다. 이는 도서관 사서에게 특정한 책을 찾아 달라는 과정과 같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이나 김초엽의 소설 「공생가설」처럼 내 머리 속에 누군가가 살면서 기억과 반응에 관련된 작업을 하는 듯하다. 



그런데 기억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어떤 기억은 불러오는데 엄청 짧은 시간이 걸려 ‘몸이 기억한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고, 어떤 기억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아예 기억나지 않는 것도 다반사다. 그 와중에 그 과정이 밀리세컨드 단위의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다는 게 오묘하다. 또한 기억은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A와 같은데, 사실은 B인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잘못된 기억은 마치 진짜인 듯하다. 그리고 우리는 가끔 기억을 잃기도 한다. 그것을 ‘망각’이라고 하며, 이는 때로 의식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하나의 방어 기제로서 말이다.  



산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에서 미츠하와 타키는 뜬끔없이 눈물을 흘린다. 자신이 슬픈지, 기쁜지, 또는 어떠한 감정 상태인지도 모르면서. 이상하게 뭉클한 순간이 가끔 찾아온다. 김초엽의 「공생가설」에서도 비슷한 순간이 그려진다. 사람들은 류드밀라의 ‘행성’ 그림을 보면서 황홀경에 빠진다. ‘행성’은 마치 실제 존재하는 곳처럼 느껴진다. 산카이 마코토와 김초엽은 이유 없는 눈물의 근원을 다른 세계에 둔다. 서로 다른 시간대의 평행 세계 말이다. 과거에는 존재했지만 현재에는 사라진. 우연히 과거로부터 현재로 전해진 누군가의 의지는 다른 누구에게 향수로,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이상하게 뭉클한 순간이 가끔 찾아온다.


왜 사람들은 류드밀라의 세계에 열광하고 환호했을까. 왜 사람들은 그녀의
그림에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세계에 대한 향수를, 오래된 그리움을 느꼈을까. 
「공생가설, 김초엽



아기는 태어나자 마자 울기 시작한다. 무엇이 그리 슬프길래. 열 달 동안 자궁 속 세계만 경험하다 세상에 나온 아이는 모든 것이 두렵다.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린 그 당시의 기억이 없다. 망각은 선물이다. 크면서 경험한 모든 것이 늙어서는 기억나지 않는다. 행복했던 기억도, 슬펐던 기억도 나이가 들어서는 가물가물해진다. 그렇게 인간은 무에서 태어나 무로 죽는다. 그렇게 갈 것이면 살아 생전 왜 그리도 많은 것을 기억하고, 느끼며 살았는지 허망하기도 하다. 하지만 ‘생(生)은 고(苦)’라 함을 생각해보면 그리 잊는 것 또한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잊지 않으려는 자들이 있다. 미츠하와 타키, 그리고 류드밀라가 그렇다. 아무도 모르지만 실재하는, 혹은 실재했던 두 세계를 모두 인지하는 존재다. 망각하지 못하는 존재다. 왠지 모르겠지만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각각 ‘이름’과 ‘그림’을 매개로 기억 속에서 멀어져만 가는 두 세계를 이으려고 한다. 각자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는 저쪽 세계를 조금이나마 기억하고자.


너의 이름은, 산카이 마코토
미츠하. 너는 지금 꿈을 꾸고 있구나.
「너의 이름은」, 산카이 마코토 



우리는 저마다 많은 것을 기억하고 살아간다. 때로는 잊기도 하고, 잊히기도 한다. 가물가물한 그 기억이 아련하다. 그러한 상황이 감사하기도, 애석하기도 하다. 늘 그렇듯이 나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자 한다. 잊고 싶지 않지만 망각되는 것, 상기하고 싶지 않지만 기억되는 것. 그 모두가 나름의 의미가 있음을 믿는다. 

작가의 이전글 방황하는 존재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