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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memike Nov 06. 2020

한국의 전통 건축, 그리고 두 현대 건축가

서른한번째 이야기


학부 프로젝트로 한옥의 특성을 빌려와 적용하겠다는 친구들도 여럿 있었기에 관심을 가질 법도 한데, 나는 한옥 자체에 영 마음이 가질 않았다. 대개 경사가 있는 산지에 위치하여 도시의 상황과 상이하며, 넓은 대지를 필요로 하는 수평적 공간감이 먼저 떠올라서 멀게만 느껴졌다. 나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도 레퍼런스를 찾을 때도 유난히 해외 건축들 위주로만 찾아본 것 같다. 자료의 접근성 무제도 있겠지만 국내에서 건축에 임하면서도 국내의 근현대 건축, 그리고 전통 건축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음을 반성한다. 흔히 한국 전통 건축의 정수로 종묘, 부석사, 병산서원을 뽑는데, 좋다고만 들었지 직접 가본 것은 비교적 근래의 일이다. 그 와중 다행스럽게도 근래에 영주와 안동 답사, 그리고 서울도시건축관의 주거 심포지엄, 오픈하우스 서울을 통해 우리나라의 건축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주거 심포지엄 강연 후, 조병수 건축가의 작업물에 대한 조병수 건축가와 최욱 건축가의 대화 중‘한국적인 건축’, ‘전통 건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오픈하우스 서울 최욱 건축가의 가회동 한옥에 대한 설명을 통해 그가 생각하는 한국 전통 건축의 특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단, 건축에 대해 깊게 알지 못하는 점, 누군가의 작업에 대해 평할 수 있는 안목이 부족하다는 점을 유념하여 주거 심포지엄과 오픈하우스 서울의 조병수 건축가, 최욱 건축가의 말씀을 빌려 이야기하겠다. (이하 조병수 건축가를 ‘조’, 최욱 건축가를 ‘최’로 통일함)



최는 한국의 전통 건축은 경사지 위에 여러 채가 놓이면서 단면이 있는 건축을 만든다고 한다. 그리고 흔히 사람들이 전통 건축은 각각이 조화를 이룬다고 하는데, 이는 오해라고 한다. 오히려 각 채는 전체의 조화를 계획하지 않고, 스스로 툭 던지듯 놓여 병치된다고 한다. 다만 그 병치와 함께 건축의 휴먼 스케일 덕에 건축이 조화롭다고 느껴진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5NuZ8Md1TGQ&t=479s

오픈하우스 서울, Youtube 영상


조는 BCHO에서 거제에 지은 지평집의 배치를 이야기하며 한국 전통 건축의 배치에 대해 말했다. 각 객실 동이 살짝 틀어져 배치되면서 틈을 만들고 이가 전통 건축의 유기적인 배치와 유사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이에 최는 전통 건축은 ‘병치’가 두드러지는 반면, 조의 건축에서는 자기완결적인 모습이 보인다고 했다. 또한 수묵화처럼 그린 조의 스케치와 대비되게 조의 건축은 흔들림 없이 찍어낸 도장의 느낌이 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조의 건축은 간결하지만 긴장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나는 그러한 생각은 한 적은 없었지만 최의 말을 듣고 쉽게 수긍할 수 있었다. 


http://www.bchoarchitects.com/ws/projects/jipyoung-guesthouse

(BCHO Architects의 지평집)


부석사는 산 아래부터 일주문, 천왕문, 범종루, 안양루, 무량수전, 그리고 조사당과 자인당이 위치해 있다. 일주문을 지나 거대한 천왕문이 부석사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다. 일주문은 깊이가 없지만 천왕문은 사천왕을 모시고 있기에 깊이가 있다. 그래서 천왕문을 지나며 잠시 어둠 속에서 문 너머로 빛과 계단을 볼 수 있다. 범종루와 안양루는 무량수전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누각이기에 필히 누각 아래로 길을 오를 수밖에 없다. 누각 자체는 등산자의 입장에서 산 위로는 시야를 제한하고, 산 아래로는 스스로 풍경을 담는 프레임 역할을 한다. 또한 경사길과 계단길을 올라 무량수전에 가까이 가면서 각 건물의 배치의 축이 살짝 틀어져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올라온 길을 뒤돌아보면 틀어진 가람 배치와 소백산 산자락이 함께 보인다. 흔히 무량수전에 이르기 전까지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고 하는데, 나는 돌아봐서 시퀀스 끝의 극적인 파노라마를 제대로 못 느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종종 돌아보는 것 또한 감동은 충분하다. 


부석사 무량수전



모든 한옥이 그러한 것은 아니겠지만 여러 채가 있는 한옥의 경우 서로 다른 시기에 지어진 건물이 한 공간 속에 자리잡는다. 때문에 배치와 양식의 측면에서 최욱 건축가의 말대로 각각의 채가 독주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오브제 마냥 그 자리에 있는 것도 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도 이질적이지 않고 조화를 이룬다. 병치다. 건축물에 쓰인 목재는 질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세월을 지나 마모되었을 나무 기둥의 결이 그림 같고, 그 촉감은 거칠지 않고 부드럽다. 녹색과 적색, 그리고 단청은 과할 듯 싶으면서도 과하지 않다. 처마와 누각 아래서의 공간감 또한 새롭다. 그늘과 우산의 실용적인 역할을 하면서도 프레임을 만들어 풍경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심리적 역할을 다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유사하다고 느껴지는 중국과 일본의 건축보다도 유기적으로 느껴진다. 병산서원의 휘어진 기둥을 보면 우리의 선조가 건축과 자연을 어떠한 태도로 접근했는지 알 수 있다. 자연에 감응하고, 자연의 일부로 자리잡고자 했다. 조병수 건축가와 최욱 건축가의 경우 각각 미국과 이탈리아에서 유학을 했지만 우리나라 고유의 건축 미학을 현대적 해석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작업해온 것으로 보인다. 


병산서원 만대루의 휘어진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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