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amemike Nov 12. 2020

Post Occupancy

서른두번째 이야기


A great building must begin with the immeasurable, must go through measurable means when it is being designed,
and in the end must be unmeasured.
Louis Kahn


병산서원 동재 너머로 보이는 고직사. 외부에서 내부를 통해 건너편 외부가 보이는 한옥의 특징이 보인다.


건축에는 ‘짓기 전’의 과정과 ‘지은 후’의 과정이 있다. ‘짓기 전’에는 Louis Kahn의 말처럼 측정할 수 없는 것들로 시작한다. 정서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역사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물리적 실체를 갖지 않은 것들, 혹은 상상과 관련된 것으로 시작하여 형상을 갖출 준비를 한다. 그 이후에는 자재, 노동, 돈 등의 측정 가능한 것을 수단 삼아 건축이 형상을 가진다. ‘지은 후’에는 사람이 건축 안에 들어와 생활을 하고, 건축물 이상의 무언가를 만든다. ‘지은 후’에 사람들이 건축물 안에 들어와 생활하는 것을, 혹은 그 이후의 상황을 영어로 ‘Post Occupancy’라고 한다. 과연 건축가들은 건축으로 물리적 형태 이상의 것을 그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2020 오픈하우스 서울의 오픈스튜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문도호제 임태병 소장님, 네임리스 나은중, 유소래 소장님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_pLGA5eiHgQ

오픈하우스 서울 2020, 문도호제 임태병 소장님의 '해방촌 해방구'


문도호제 임태병 소장님은 ‘중간주거’라는 말을 빌려 본인의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이는 집 안의 공적인 공간을 다른 사람이 일시적으로 점유할 수 있다면 주거의 형상이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한다. 집의 일부가 공유될 수 있다면 ‘내 집’의 영역이 동네까지 확장될 수도 있다. 네임리스의 나은중, 유소래 소장님은 ‘삶’, ‘원시성’, 그리고 ‘불완정성’에 관심을 갖고 건축에 임하는 듯하다. 건축에 있어서 시간의 의미에 관해서는 디자인으로 담을 수 없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그래서 조금은 덜 만들고 비워두고자 한다. 프로젝트 자체의 성향인지, 건축가의 성향인지 모르겠지만 두 스튜디오가 ‘post occupancy’에 접근하는 방식이 상이해 보인다.



문도호제의 해방촌 주택 1층과 2층, 그리고 그 위의 층은 성격이 확연히 구분된다. 건축주의 요구대로 손님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할 수 있는 다이닝 공간을 1층에 두고, 건축주가 책을 읽고 연구를 할 수 있는 서재, 거실, 그리고 다락이 2층부터 이어진다. 여기서 임태병 소장님이 그리는 ‘중간주거’의 모습이 나온다. 주방과 다이닝은 경우에 따라 집 주인 외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내어줄 수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1층과 2층의 입구를 분리해놓고, 1층은 신발을 신고 들어가지만 2층부터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도록 현관이 있다. 또 현재 문도호제의 1인 오피스가 위치한 곳은 오피스와 게스트하우스(stayfolio)가 한 지붕을 아래에서 공간을 점유한다. 간단히 차를 내려 마실 수 있는 팬트리의 경우, 문 하나를 두고 낮에는 임태병 소장님이, 밤에는 게스트하우스 이용자가 사용한다.



네임리스의 아홉칸 집 ‘nine grid system’의 원리에 따라 구축되었다. 1층 주택을 벽만으로 9칸으로 공간을 나누어 사용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주택의 경우와 달리 대다수의 방은 그 용도가 정해져 있지 않다. 배수와 설비의 문제로 위치를 옮길 수 없는 화장실과 주방을 제외하고 모든 방은 계절에 따라, 기호에 따라 그 용도를 달리할 수 있다. 그저 가구 위치만 바꾸면 그만이다. 또한 재료의 마감마저 콘크리트 자체를 노출시켰으며, 건축주의 요구대로 욕조도 콘크리트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네임리스는 늘 완벽함 보다는 조금은 덜 만들어진, 불완전한 상태를 추구한다고 한다. 이는 가능성, 혹은 여지를 남기는 것이며,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빈틈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https://blog.naver.com/designpress2016/221679061603


임태병 소장님은 ‘공용공간’과 ‘공유공간’은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공유공간’은 유동적인 공간이 될 수 있는 반면 관리의 부재로 인해 쉽게 버려질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한다. 하지만 ‘공용공간’은 관리의 소재가 확실하여, 상황에 따라 타인과 함께 사용할 수도, 개인적인 공간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1인 스튜디오임에도 불구하고 문도호제는 프로그램의 운용, 공간의 책임, 점유 방식까지 치밀하게 계산한 세밀함이 느껴진다. 네임리스의 경우 치밀함 보다는 불완전함이 돋보인다.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 미래를 위해 공간을 비워둠이 그러하다. 점유의 방식을 사용자에게 온전히 넘긴다.



사실 문도호제와 네임리스는 ‘post occupancy’, 혹은 ‘후 점유’에 관하여 대척점에 위치하진 않는다. 한쪽은 치밀함으로, 한쪽은 불완전함으로 양극에 위치한 것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문도호제의 경우에도 ‘신발을 신고 벗는’ 행위까지 제안하면서도 입주자마저 당혹스러웠던 공용 공간의 활용법을 입주자에게 배우기도 한다. 네임리스는 점유의 과정을 관망하는 듯하지만, 그 관망 자체가 그들의 치밀한 전략이다. 과연 건축이 행위를 결정할 수 있는가, 혹은 프로그램의 설정이 얼마나 유의미한가에 대해 고민이 많았던 시점에 이 두 건축가 집단으로부터 현명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한국의 전통 건축, 그리고 두 현대 건축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