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amemike Nov 15. 2020

1세대 건축 예능 프로그램

서른세번째 이야기 


어릴 적 교과서를 보면 삶의 필수 요소로 늘 ‘의식주’를 뽑았다. 물론 현재는 또 다른 동향이 있는 듯 하지만 관심의 순서도 의, 식, 주 순으로 느껴진다. 미디어를 보면 알 수 있다.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연예인들의 인기와 함께 어떻게 보이느냐, 혹은 무슨 옷을 입느냐에 대한 대중의관심이 높아졌다. 유치한 초딩 시절 다들 한번쯤은 연예인 따라 머리도 바꿔보고 했을 것이다. 10년대 이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이미지 기반의 네트워크가 발전하면서 소위 ‘맛집’에 대한 수요도 늘었다. TV 프로그램에서도 음식에 관련된 예능 프로그램도 함께 늘었다. 현재는 ‘핫플레이스’가 대세다. 인플루언서들이 추천하는 공간에서 인증샷 한 번 남기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또한 ‘구해줘 홈즈’‘알쓸신잡’으로 인해 ‘주거’ ‘건축’에 대한 대중의 인지도가 높아졌다. 


https://www.youtube.com/watch?v=cl4xO1Y_IyI

tvN 프로그램, '알쓸신잡'의 유현준 건축가


매스컴이 시대상을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했을 때, 현재의 건축은 어느 위치에 있는가. ‘핫플’과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이에 이미지 기반의 인스타그램이 미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사람들은 기왕이면 예쁜 카페, 멋진 숙소, 남들은 가지 못하는 곳을 원한다. 건축과 인테리어는 별개인가에 관해서는 얘기할 수 없지만, 이러한 추세 속에서 현재는 인테리어 업계의 활약이 돋보인다. 아무래도 상업 시설에 대한 투자 비용이 큰 규모의 시설보다 더 빠르게 회수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건축과 인테리어는 규모의 차이는 아니지만. 흐름이 중요한만큼 건축과 공간에 관한 관심이 뚜렷한 형상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2003년, MBC에서 ‘책!책!책!책을 읽읍시다!’를 방영했다. 매달 추천 도서를 선정하고, 지역 사회와 군을 포함한 각종 단체에 책을 보급하여 ‘전국민 독서 운동’에 앞장섰던 프로그램이다. 심지어 지자체, 시민단체, 그리고 건축가와 함께 어린이, 청소년 도서관(‘기적의 도서관’이라고 이름 지었다.)을 짓기까지 했다. 어떠한 자본으로 TV 프로그램이 지역 도서관까지 지었을 수 있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놀랍기까지 하다. 심지어 참여한 건축가가 정기용 건축가였던 것도 놀랍다. 내가 사는 동네도 ‘기적의 도서관’이 유치될 뻔했지만, 무슨 연유인지 무산되었다. 하지만 시에서 자체적으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앞에 어린이 도서관을 지어 나도 수혜를 봤다. 하교 후 집에 가면 아무도 없었던 때이기에 도서관에서 가끔 시간을 보내다 집에 오기도 했다. 


일산 소재의 한 어린이도서관. 원래는 이곳에도 기적의 도서관이 들어설 뻔 했다.


당신의 유년에도 ‘기적의 도서관’이 자리 잡고 있는가. 



멀지 않은 미래에는 오롯이 건축에 관한 프로그램도 생기길 바란다. 건축은 시간과 자본이 많이 필요한 분야다. 좋은 설계안이 나오고 실제로 건물이 완공되기까지 좋은 부지, 시간, 인적, 물적 자원이 필요하다. 그러기에 순간적으로 인기를 끌어야 하는 방송에서 기획부터 설계와 시공까지를 다루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책!책!책!책을 읽읍시다!’는 1년 안에 도서관을 짓지 않았는가. 그런 의미로 느낌표는 사실 ‘1세대 건축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2세대, 3세대가 안 나올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러기에 희망을 가져본다. 미디어에서 여러 건축가가 활동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도 이제 좋은 건축에 대한 열망이 점차 커져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4FRgy4I6iSA

MBC 프로그램, '책!책!책!책을 읽읍시다!'


좋은 공간이 사람에게 어떤 효용 가치가 있는지 정량적으로 판단하여 말하지 못하겠다. 아쉽게도 그저 주변 사람들에게 “그렇게 한 번 살아봐.” 정도로만 말하는 수준이다. 나 또한 내가 생각하는 좋은 공간에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일까. 서울대학교 김광현 교수님의 담론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B급 건축. B급 건축이 많아져야 한다. 한 사회의 위상과 격은 A급 하나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B급이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 집이 좋은 공간이 아니어도 집처럼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좋다면 삶의 만족도는 높아질 수 있다. 그러한 공간이 공원, 지역 도서관, 미술관과 박물관, 그리고 체육시설 같은 공공 공간이다. 건축 인프라의 혜택은 고스란히 시민에게 돌아간다. 그렇기에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공공 건축에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비판도 중요하다. 관심은 비판이 되고, 각성이 되어 법 제도화되어야 한다. 이는 자연스레 물리적 형태로서 우리의 눈 앞에 나타날 것이다. 


완연한 가을, 뜬금없이 건축 예능을 보고 싶다.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Post Occupanc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