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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memike Nov 20. 2020

그 자리에 서 있어줘 고마운 것

서른네번째 이야기


이상하게 눈에 밟히는 나무가 있다. 내게는 보통 큰 나무들이 그렇다. 고등학교 체육관 앞의 나무, 서초역 사거리 매연 속에 홀로 서 있는 나무, 상수 나들목에서 좀 내려오면 보이는 나무가 눈에 선하다. 장소에는 시간이 서리기 마련이다. 큰 나무는 그 시간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는 듯해 눈이 간다. 그래서 그 나무를 보면 그 시절이 생각나기도 한다.



고등학교 체육관 앞의 나무는 나와 내 친구들의 소소한 일탈을 지켜본 나무다. 밤하늘 별이 잘 보이는 시골 동네 기숙 학교를 다녔던 우리에게 일탈이라고 하면 고작 읍내나 시내에 놀러가는 것이 전부였다. 학교가 산속에 있어 짜장면 하나라도 먹으려면 걸어서 15분을 나가야 했다. 때문에 주변 식당에서는 전화를 하면 픽업 서비스를 무료로 해주기도 했다. 물론 당시 주말에 주변 식당을 가기 위해서는 기숙사 사감님한테 허락을 받아야 했는데, 나를 포함한 많은 친구들이 몰래 나갔다. 몰래 배달을 시키려 해도 받는 장소는 그 나무를 지나야만 했다. 각자의 부모님이 학교에 오는 날에도 그 나무는 우리의 비밀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그래서 졸업한 이후에도 학교에 가면 익살스럽게 서있는 그 나무가 고맙다.



대법원을 오른쪽에 두고 서초역 사거리를 지나면 대로에 큰 나무 하나가 거멓게 서있다. 매연에 찌든 모습이 안쓰럽다. 그 큰 길에, 매일 막히는 그 도로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나무가 얼마나 힘들까 싶다. 교대역으로 재수학원을 다니던 시절의 내 모습과 겹쳐지면서 그 나무가 뭔가 아련했다. 또 대법원과 검찰청 앞에서 우리나라의 굵직한 사건들을 지켜보았을 그 나무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사람 때문에 나무만 고생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 모난 세월을 얼마 안 되는 땅 속에 뿌리 박고 지내온 그 나무가 대견하다. 그래서 그 길을 자주 다니던 시기를 지나 가끔 그곳에 가면 시꺼먼 그 나무부터 찾게 된다.



상수에 있는 큰 나무는 그냥 정겹다. 내가 그쪽 길 근처에 있는 카페를 좋아해서인지 나무만 보면 커피향이 느껴지는 것 같다. 차들도 비교적 천천히 다니는 그 길의 끝자락에 서 있는 그 나무는 내게 편안함의 상징이다. 그 나무를 지나면 보통 강변북로를 타게 되는데, 요즘 들어 새로워진 여의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기도 하다. 쉬지 않고 달리는 강변북로의 차들, 한강 건너편에 보이는 바쁜 도시 여의도, 그에 반해 조용한 합정과 당인리, 그리고 그 사이의 그 큰 나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도심 속 생활에서도 그 큰 나무가 있어 위안이 된다.


같은 나무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볼 수 있는 것이 고맙다.


내가 언제부터 나무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자연보다는 도시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큰 나무만 보면 이상하게 정이 간다. 상황이 중요한가보다. 척박한 땅에 쓸쓸하게, 때로는 굳세게 서 있는 나무에 감정 이입이 되는 것일 수도. 자주 보지는 못해도 근처만 가면 그 크기 때문에 멀리서도 보여 반가운 나무다. 가끔은 그렇게 바라만 봐도 편안해지는 것들이 있다. 그 자리에 서 있어주기만 해도 고마운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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