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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memike Nov 26. 2020

공간에 자리하는 삶의 흔적

서른여섯번째 이야기



한달에 걸쳐 ‘오픈하우스서울’‘서울도시건축전시관 주거심포지엄’에 온오프라인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11월은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가’에 대해 생각한 한달이었다. 집은 어떤 의미인가. 나는 어떤 집에서 어떠한 삶을 만들고 싶은가. 집은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어떠한 가치를 지니는가. 코로나 시대의 집의 역할에 대해서도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졌다. 오픈하우스서울의 프로그램 일환으로 방문한 써드플레이스 홍은 2에서의 경험과 함께 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자 한다. 



써드플레이스 홍은 2는 에이라운드 박창현 건축가가 설계한 다세대주택이다. 총 다섯 가구가 한 달에 한번 같이 식사를 하는 ‘일월일식’, 공동텃밭을 가꾸는 ‘텃밭이룸’,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고 커피도 마실 수 있는 라운지 ‘아침든든’ 등의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며 현대 사회에서 잃어버린 주택 내 공동체의 형상을 다시 그리고 있다. 또 다년간 홍은동 일대를 리서치한 박창현 건축가와 서울시는 현재 각각 다른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써드플레이스 홍은 1과 2와 더불어 연작을 만들어 거점 시설을 만들고 새로운 마을 공동체를 만들고자 계획 중에 있다. 


써드플레이스 홍은 2는 사방이 모두 주택으로 둘러싸인 필지에 위치해 있다.


써드플레이스 홍은 2가 특이한 점은 계단과 복도를 포함한 공용공간이 다른 주택에 비해 훨씬 넓다는 것이다. 또 계단의 위치가 층마다 달라 각 세대로 들어가는 입구가 모두 다르다. 박창현 건축가는 이에 대해 ‘어디서부터가 나의 집인가’에 대한 고민의 결과라고 했다. ‘일월일식’과 ‘텃밭이룸’ 같은 프로그램을 각 세대에서 하나씩 책임지는 것이 입주 조건이었다는 말은 공동체 의식을 굉장히 중요시한 건축물임을 드러낸다. 하지만 각 세대로 가는 입구를 모두 다르게 함으로써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내 집을 가기 위해서는 다른 집을 거쳐가야 하는 동선 덕에 이웃과의 만남을 유발하기도 하는 모습이 특이하다. 또 일층에서 튼 음악소리가 계단을 타고 이층으로 올라오기도 한다. 그렇게 이곳의 넓은 공용공간은 사생활은 지켜주면서도 접촉은 장려하는 적절한 공간이다. 


공용공간과 각 세대 창가에서 여러 식물을 키우고 있어 타공판과 함께 도시의 배경을 구성한다.


건축과 프로그램도 인상적이지만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삶이 묻어난다’라는 말이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그 모습을 실제로 볼 수 있었다. 삶이 묻어나는 공간. 그건 애착과 보살핌 속에서 나타난다. 그런 공간을 보면 그곳에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생각하게 된다. 복도와 테라스에 있는 화분과 식물은 움직임에 따라 바깥이 은은하게 보이는 타공판과 함께 건축물이 도시의 일부로서 작동하게 한다. 반면 각 세대 내 창가에 있는 작은 화분과 식물은 또 다른 느낌이다. 식물을 키운다는 것은 책임과 애정의 문제다. 제때에 물을 주어야 하며, 적절한 온도와 조도를 유지해줘야 한다. 고양이를 키우는 두 세대의 모습도 애틋했다. 또 각 세대마다 공통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이 있었다. 5평에서 10평 남짓의 작은 공간에 모두 책이 있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믿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입주자들의 가치관이 느껴졌다. 어떤 책을 집에 두는지는 그 사람이 자주 찾는 신념과 가치관을 보여준다. 작은 공간이고, 직접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가늠해볼 수 있었다. 공간에서 삶이 느껴졌다. 


써드플레이스 홍은 2의 주요 프로그램인 '아침든든'을 위한 공유 라운지


최근 들어 관심 있게 보는 것은 집에서의 다이닝의 모습이다. 요리를 잘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나는 누군가를 집에 초대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자랐다. 그래서 우리집 식탁은 주로 가족만 사용하는 공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가면서 가족이 함께 식탁을 공유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점점 더 느끼고 있다. 한 가족 내에서도 구성원마다 생활 패턴과 습관이 다르다. 때문에 집 내에서 유일하게 다른 사람과 무엇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인 다이닝이 더욱 중요하다. 현대사회에서 식사는 음식 섭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식사는 습관이고, 공유 행위이며, 의사소통이고, 문화다. 음식을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그 자리를 함께 점유한다는 것이 중요하며, 누군가를 초대해서 각자의 무언가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소중한 경험이다. 



시간은 삶으로 나타난다.
삶은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공간에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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