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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memike Dec 31. 2020

앱스트랙트 : 디자인의 미학,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형식

마흔일곱번째 이야기


앱스트랙트 : 디자인의 미학

흔히 다큐멘터리라 하면 밋밋한 영상에 그에 어울리는 잔잔한 음악이 같이 나오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래서 어떤 정보를 얻거나 공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는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몇몇 NETFLIX ORIGINAL 다큐멘터리는 그 자체가 굉장히 흥미진진하다. 올해 봄에 나왔던 「마이클 조던 : 더 라스트 댄스」도 그러했고, 이 글에서 이야기해보려는 「앱스트랙트 : 디자인의 미학」 시리즈도 그렇다. 「앱스트랙트 : 디자인의 미학」는 예술, 건축, 산업 디자인과 영상 등의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를 한 편에 하나씩 소개한다. 이 글에서는 14명의 디자이너 중 세 명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 건축가 비야케 잉겔스, MIT Media Lab 교수 네리 옥스만, 그리고 예술가 올라푸르 엘리아손. 


왼쪽부터 Neri Oxman, Bjarke Ingels, Olafur Eliasson


건축가 비야케 잉겔스, Yes Is More 

비야케 잉겔스(Bjarke Ingels)는 덴마크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다. 그는 코펜하겐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Bjarke Ingels Group(BIG) 건축 사무소를 시작하여 유럽 전역, 중국, 그리고 미국에서 재밌는 아이디어로 시작하는 건축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는 내가 건축을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 때 가장 관심 있게 찾아본 건축가이기도 하다. 일단 사무소 이름부터 특이하다. ‘BIG’이라니. 심지어 회사의 홈페이지 주소도 'www.big.dk'로 간단하고 집약적이다. 사소의 이름처럼 그곳의 작업물은 다 크고 파격적이다. 그런 운명적인 이름을 만들기 위해서 부모님이 그의 이름을 그렇게 지은건가 싶기도 하다. 


https://big.dk/#projects


다큐멘터리에서 나오는 것처럼 덴마크의 원로 건축가들은 그의 건축을 싫어했다고 한다. 건축가들에게는 뭔가 진중한 면모가 다들 있는 것 같다. 본인이 중시하는 가치관이 너무나도 확고하여 그에 벗어나는 건축은 맹렬히 비판한다. 조금은 저속한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생각을 파는 사람들이라 고집이 굉장히 세다고 느껴진다. 늘 빛과 공간감, 그리고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그들이다. 그러한 모습 때문에 사람들은 건축을 예술과 기술의 사이 어딘가의, 범접하기 어려운 분야라고 생각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 이러한 씬(scene)에서 아이가 ‘장난스럽게’ 쌓아올린 레고 모형 같은 비야케의 건축은 비판을 받았다. 실제로 그는 연령과 상관 없이 레고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인 LEGO HOUSE를 짓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ZfnRsYhmMo

LEGO HOUSE 영상, YouTube


비야케의 건축은 쉽고 재밌는 발상에서 시작한다. 간단한 그림(diagram)으로 건물의 형상과 컨셉을 설명할 수 있는 것도 건축을 쉽게 만들고자 하는 그의 노력 덕분이다. 예를 들어 밴쿠버에 지은 Vancouver House를 보자. 네모난 필지에 고가도로가 지나가서 흔히 도시에서 볼 수 있는 네모난 형태의 건물을 짓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다리가 필지를 뚫고 지나가는 모양을 따라 저층부는 삼각형 모양의 평면을 만들고, 위로 올라가면서 면적을 넓히며 네모난 평면을 갖는 타워를 만들었다. 이러한 생각의 흐름을 그는 간단한 그림으로 이야기하고, 실제 건축물로 구현해냈다. 이런 식의 간단한 그림(diagram)으로 아이디어부터 건물까지 이어지는 건축을 ‘diagrammatic architecture’라고 한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아마 다큐멘터리에서 그의 부모님이 이야기해주는 것처럼 만화가가 되고 싶었던 그의 유년 시절이 영향이 컸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https://architizer.com/projects/beach-and-howe-st/


비야케의 목표는 건축에 긍정적인 원동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그는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한다. 그는 작업에 참여하는 모든 인원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혼종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코펜하겐와 브룩클린에 있는 사무소의 구성원을 보면 그의 가치관이 회사 운영에도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세계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건축 사무소들도 사무소가 위치한 국가의 국민을 우선적으로 채용한다. 그리고 해외 인재를 소수 채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BIG은 다른 회사보다도 해외 인재에게 열린 채용을 적극적으로 어필한다. 건축계의 유명한 논쟁인 미스 반 데 로에의 “Less is more”과 로버트 벤투리의 “Less is bore”의 대립 사이에서 비야케 잉겔스가 던지는 “Yes is more”는 다양성을 필두로 건축을 모두의 삶 속으로 가져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MIT Media Lab 교수 네리 옥스만, “I am many things”

네리 옥스만(Neri Oxman)은 이스라엘 출신의 디자이너다. 내가 본 그녀의 모습은 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사 벨라트릭스 같았다. 곱슬 머리와 뚜렷한 이목구비에 신기한 그녀의 작업물의 이미지가 얹어져 마법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큐멘터리를 시작하면서 그녀는 본인을 이렇게 표현한다.


I am many things


건축가가 되기 위해 수련했고, 의대에 다니기도 했으며, 현재는 MIT Media Lab에서 Mediated Matter 랩을 이끌고 있는 상황이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건축, 예술, 바이오, 그리고 엔지니어링까지 정말 분야를 가리지 않고 총동원해서 작업을 하는 모습 또한 마찬가지다. 네리 옥스만은 말 그대로 하나로 표현할 수 없는 ‘many things’다. 그저 쉽게 소개하기 위한 표현이 MIT 교수였음이 느껴진다. 


https://www.media.mit.edu/groups/mediated-matter/projects/


학부 프로젝트에서 파빌리온(건물에 비해 단기간에 지어지고 해체되는 건축물이자 설치 예술의 한 형태)을 만든 적이 있다. 당시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파빌리온을 설명해주면서 자신이 직접 본 것 중에 가장 신기한 파빌리온은 ‘누에가 만든 파빌리온’이라고 했다. 이는 네리 옥스만이 고안한 'Silk Pavilion'이다.  사람이 디자인한 건데 누에가 만든다는 게 말이 되나 싶었지만 나중에 직접 찾아보니 되게 참신했다. 누에를 올려놓을 수 있는 최소한의 틀만 만들고 그 위에 실을 만드는 누에를 올려 디자이너도 마지막 모습이 어떠할 지 모르는 파빌리온을 만드는 장면은 혁신적이었다. 최근 서울도시건축전시관에서 ‘worm skyscraper’을 통해 플라스틱 스티로폼을 갉아먹는 벌레로 환경 문제에 대한 아이디어를 펼친 이용주 건축가의 실험도 그 연장선으로 보인다. 


Silk Pavilion, 사진 출처 Archdaily, Copywright Steven Keating


네리 옥스만은 물성과 자연을 주제로 실험을 이어간다. 갑각류의 껍데기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키틴에서 영감을 받아 그 밀도와 투명도를 조절해 3D 프린팅을 하기도 하고(Aguahoja), 빛, 온도, 그리고 영양소까지 조절하여 인공적으로 봄의 환경을 연출해 벌이 1년 내내 번성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Synthetic Apiary)을 찾기도 한다. 그녀는 자연에 모든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연을 유심히 관찰하고, 실험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그러한 비전 때문에 화학, 생물학, 컴퓨터, 건축, 예술 분야의 인재들이 모두 Mediated Matter에 들어가길 희망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그녀가 처음 생각한 아이디어로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건축 자재를 만들고, 지속가능성이 있는 인간의 모습을 구현해낼 수 있을 것이다. 50년, 혹은 100년 뒤에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길 바라며, 현재 즉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은 이미 늦은 기술이라 생각하는 MIT Media Lab을 이끌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런 네리 옥스만이다. 


https://www.dezeen.com/2019/10/17/aguahoja-i-mediated-matter-group-design/


설치 미술가 올라푸르 엘리아슨

올라푸르 엘리아슨(Olafur Eliasson) 예술을 보는 관객의 참여를 중요시 하는 덴마크 출신의 예술가다. 리움 미술관과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의 전시로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에서 그가 관람객에게 작업물의 공저자(coauthor)가 되자고 말하는 것처럼 그는 예술에 있어서 관람객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의 작업물은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듣고, 만지고, 움직이면서 바라보고, 때로는 시간을 두고 경험해야 하는 인터랙티브 아트(interactive art)다. 몸으로 쉽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여느 현대 미술보다 대중 친화적이다.



베를린에 있는 그의 스튜디오에는 여러 분야에서 일을 하다 온 사람들이 있다. 건축과 예술은 물론, 아이디어를 실제 구현하기 위해 엔지니어까지 모든 작업에 참여한다. 이는 비야케 잉겔스의 BIG과 Neri Oxman의 Mediated Matter 모두의 공통점이다. 현실을 관찰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로 혁명적인 미래를 그리는 사람들의 집단이기에 많은 분야의 협력을 공통적으로 요한다. 올라푸르 엘리아슨은 그런 스튜디오에서 빛, 색, 그리고 공간감에 대해 실험을 진행한다. 그런 그의 작업물을 보면 자연스레 빛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연구하는 예술가 제임스 터렐이 떠오르기도 한다. 두 예술가 모두 전영백 작가의 책 「코끼리의 방」에서 서술한 것처럼 예술 작품에 직접적인 참여와 경험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흐름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처럼 그의 작업은 다른 예술가들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독자성이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VoMJHSNyI0&t=85s


조명과 프리즘을 이용해 여러 시리즈 작업물을 만들어내고 있고, 이는 세계 각국의 여러 미술관에서 상설 전시가 이뤄지기도 한다. 그래서 소규모의 작업물에 대해서는 친숙하다. 그런데 내가 가장 아쉬운 것은 Tate Modern의 터빈홀에서 진행한 ‘The Weather Project’와 그린란드 바다에서 가져온 빙하를 광장에 전시한 ‘ice Watch’를 직접 보지 못한 것이다. ‘The Weather Project’에서는 거대한 홀에 인공 태양을 띄워 작렬하는 빛과 먼지, 그리고 대기를 연출해냈다. 전시 사진을 보니 누워서 인공 태양을 보기도 하고, 여러 명이 모여 춤을 추기도 하는 관람객의 모습도 있었다. 그 정도 규모의 설치 미술은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도 않으며, 이를 즐기는 관객의 모습도 놓친 게 정말 안타까울 따름이다. 또 ‘Ice Watch’는 그린란드의 빙하 조각을 그대로 광장에 가져와 녹게 하는 것을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지구온난화와 인간의 영향에 대해 시의적절한 질문을 던졌다. 그는 지속적으로 자연과 문화, 그리고 그 속에서의 인간의 역할과 위치를 논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IsT9vEpfNq4

The Weather Project, YouTube


각 디자이너마다 다른 연출 방식의 다큐멘터리

「앱스트랙트 : 디자인의 미학」는 총 14명의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담았다. 특이하게도 한편한편 모두 연출 방식이 당회에서 소개하는 디자이너에 따라 다르다. 파격적인 모습의 건축을 제시하는 비야케 편에서는 인셉션에 나오는 파리의 모습처럼 건물을 뒤집어서 촬영하기도 하고, 인터뷰를 진행하는 비야케와 거울에 비친 비야케의 행동이 다르게 나오기도 한다. 네리 옥스만 편은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는 그녀의 능력처럼 그의 주변인들을 많이 인터뷰했다. 또 관객 참여형 예술을 잘하는 올라푸르 엘리아슨 편에서는 그가 직접 다큐멘터리를 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색에 대한 인지 실험을 진행하기도 한다. 어두운 방에서 화면만 밝게 켜놓고 다큐멘터리를 본다면 실제로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보는 듯한 장면이 연출될 수 있다. 디자인을 전공하는 사람은 물론 약간의 지적 흥미를 원하는 사람도 모두 쉽게 볼 수 있는 「앱스트랙트 : 디자인의 미학」이다. 한 번 보고 나면, 그 디자이너의 작품을 직접 찾게 될 것이다. 



NETFLIX ORIGINAL, 앱스트랙트 : 디자인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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