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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memike Mar 06. 2021

관계에 관하여

예순한번째 이야기


관계

둘 이상의 사람, 사물, 현상 따위가 서로 관련을 맺거나 관련이 있음. 또는 그런 관련



아마 일반적으로 ‘관계’라 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그것에 대한 생각이 먼저 들 것입니다. 남녀, 직장, 가족. 우리는 어딜 가나 관계의 굴레 속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도 이 때문입니다. 혼자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혼자서만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이기 때문에 우리는 필히 누군가와 관계를 맺습니다. 그 목적이 사랑, 우정, 이해 관계, 혹은 다른 것에 있든 말입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피곤하다고. 현대인은 왜 관계 속에서 피곤함을 느낄까요.



원하지 않는 관계는 피곤한 법입니다. 흔히 수직적 관계에서 많이 일어나는 일입니다. 상사가 폭언을 하거나 일을 떠넘기기도 하지만 생계 유지의 이유로 직장은 가야합니다. 딜레마입니다.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도 같은 공간 안에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야 하는 경우에도 그런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학교와 군대, 각종 모임에서 한번쯤은 겪어보았을 것입니다. 또 과거와 달리 한 사람의 사회적 활동 반경이 넓어진 것도 영향이 있습니다. 그만큼 관계의 빈도는 늘어난 반면, 그 깊이는 얕아졌습니다. 진실성이 없는 관계는 소모적입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피곤함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다름’입니다. 우리는 꽤나 관용적인 척하지만 굉장히 배타적입니다. 다름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래서 갈등이 생기고, 상처를 주기도, 받기도 합니다. 



미드 「홈랜드」에는 CIA 요원 캐리 매시선과 그녀의 상사 사울 배런슨이 등장합니다. 외교적 문제 해결 방법에 있어 둘은 자주 대립합니다. 캐리가 상대편 실무자와 이야기를 할 때, 상대측은 캐리가 결정권자인 사울과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캐리는 그럴 때마다 대답합니다. “We agree to disagree.” 큰 맥락에 있어서는 같은 의견이지만 일부 사항에 있어서는 다른 입장이기에 ‘agree to disagree’라는 표현을 쓴 것입니다. 캐리와 사울은 서로의 의견은 존중하지만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서로 설득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합니다. 


때로는 맞지 않는 사람과 함께 하는 법을 터득하는 게 더 중요해 보입니다.


관계를 맺다 보면 어느 순간 서로 다름을 인지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음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지만 본인도 모르게 나와 같기를 기대하고 강요하기도 합니다. 그 기대와 강요가 본인과 상대방 모두를 답답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름은 이제껏 사회의 원동력으로 작동했습니다. 다양성과 다원성의 근원은 인간과 생명체, 그리고 지구 상의 모든 것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것, 그것이 ‘다름’입니다. 그래서 이에 반하는 획일화된 사회는 필히 무너집니다. 다르다는 것을 이해할 때, 같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나와 다름을 느낄 때, ‘나 같음’, 혹은 ‘나다움’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런 글을 쓰는 필자 또한 어디를 가나 많이 부딪히며 관계를 맺는 편입니다. 누군가의 관계에 대해 어떠한 말이나 조언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다만 스스로 관계에 앞서 단 하나의 태도를 갖고 살아갑니다.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나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을 만나 오랜 시간 함께 한다는 것은 행운입니다. 나와 같지 아니한 이들과 같은 공간 속에 살아가는 것이 일상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그런 사람들과 무탈하게 지내는 것이 중요한 관계의 방법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줄 때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Agree to disagree


 이는 모든 관계에 있어 선행되어야 할 최초의 합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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