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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memike Apr 01. 2021

독서에 관하여

예순다섯번째 이야기


책을 읽는다 함은 무엇을 뜻할까. 



일단 책 자체를 유심히 관찰해봐야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흰 것은 바탕이요, 검은 것은 글자니라. 우리나라의 경우 옛날에는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다수의 문화권에서 글자는 좌에서 우로 읽는다. 그럼 우리는 왼쪽에서부터 차례대로 글자를 한 자씩 읽을까. 굳이 그렇지는 않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말처럼 우리는 사실 책을 듬성듬성 읽는다. 각자 책을 읽을 때 자신의 눈이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아래로 갔다, 가운데로 갔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우리의 인식 체계는 순행적이지 않은 듯하다. 이제 흰 것을 보자. 자간이 있고, 행간이 있다. 그리고 주석이 달리기도 하는 여백도 있다. 개인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여백에 책을 읽다가 생각나는 것을 적기도 하는 사람도 있다. 문장 부호와 함께 여백은 독서의 템포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흰 것과 검은 것은 그렇게 적절한 긴장 관계를 유지한다. 



책의 내용물에 대해 살펴보자. 책에는 보통 글과 그림이 들어간다. 둘의 공통점은 시각 자료라는 것이다. 글은 예로부터 권력층의 소유물이었다. 사람의 말보다 멀리 갈 수 있고, 오래 동안 보존될 수 있는 의사소통의 수단이었지만, 글은 지배 수단으로 사용되어 소수만 읽고 쓸 수 있었다. 책의 내용물로서 그림은 포교의 수단으로 도입되었다. 글은 읽지 못하지만 신앙심은 널리 전파되어야 했기 때문에 종교적 이야기를 그림만 봐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피지배 계층 사이에서도 일부 문맹을 탈출했고, 글에 대한 특권 의식 또한 점차 사라졌다. 그럼에도 글을 배우는 데에는 교육이 필요하다. 책을 집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회는 그나마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회다. 그런 곳에서 아이의 최초의 독서는 부모가 대신 읽어주는 동화책이다. 본인이 직접 읽는 것보다 청각에 집중하게 되는 경험은 오히려 더 많은 상상력을 요구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최초의 독서 교육은 그림과 병행하는 음독이었을 것이고, 성장 과정을 거쳐 묵독을 배운다. 그림은 초창기에는 글을 모르는 사람을 위한 보조 장치로 이용되지만, 이후에는 그림 자체로 글 이상의 의미를 전달하기도 한다. 



책은 결국 세계에 관한 것이다. 그 세계는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우주에 관한 것일 수도 있고, 허무맹랑한 픽션이 될 수도 있다. 독서의 목적이 지식의 습득이든, 가치 판단을 위한 토대 확보이든, 혹은 그저 취미 생활이든 간에 독자가 원하는 건 결국 본인이 체험하지 못한 세계의 간접 체험이다. 그래서 책은 자기중심성 탈피에 유용하다. 물론 아집의 강화라는 악효과도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양면성은 어디에서나 보이는 것이지 않은가. 어찌됐든 독서가는 그런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집중한다. 햇볕 잘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서, 침대에 누워서, 혹은 어두운 방에 스탠드만 켜고 딱딱한 의자에 앉아 책을 읽기도 한다. 독서를 하면서 특정 자세를 취함은 그 책의 내용과 이에 대한 독서가의 마음가짐과 관련되어 있다. 책에 몰입하면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세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책에서 눈을 떼고 나서야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때도 사실 책의 잔상은 남아있다. 마치 내가 다른 세계에 들어갔다 나온 듯한 느낌. 그 느낌 때문에 책을 읽는다. 



낙관을 위해, 현재에 집중하기 위해,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책만한 게 없었다.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독서는 어떠한 세계를 그리는 것이다.


독서는 무엇일까. 일차적으로는 흰 것으로부터 검은 것을 분리해내는 시각적인 작용이다. 검은 것을 내가 원래 알고 있던 대상이나 관념에 투영해 텍스트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그 다음이다. 물론 누군가가 읽어주는 책을 듣는 것 또한 독서라고 한다면, 들은 것을 토대로 머리 속으로 상상하는 과정이 진행된다. 궁극적으로 독서는 어떠한 세계를 그리는 것이다. 그 형상은 사람마다 다르다. 확실한 건 책의 세계를 경험한 이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변한다. 다만 그 방향성에 대해서는 각자의 몫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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