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마주친 기회
“애 아빠가 엊그제 차 사고를 냈지 뭐예요?”
대화 도중 지인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신랑이 늦게까지 일을 하고 운전을 하다가 졸음 운전을 했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다행히 도로변에 살짝 부딪히는 정도였지만, 하마터면 큰 사고로 번질 뻔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어지는 말에 더 놀랐습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에요.”
지인의 신랑 분은 대체 어떤 일을 하기에 잠이 모자라 차 사고를 자주 낼까요? 운수업? 아니면 늦게까지 연구하는 연구원? 혹은 경찰이나 의사처럼 밤샘 근무가 잦은 직업? 뜻밖에도 답은 ‘IB 학교 교사’였습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졸음 운전을 할 정도라니, 그 학교가 더없이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문득 예전에 책에서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 줄여서 IB. 한국에도 조금씩 도입되고 있다는 교육과정이었습니다. 마침 곧 취학을 앞둔 아이가 있던 터라 유심히 읽었던 대목이 스쳐갔습니다. ‘집 근처에 이런 학교가 있다면 아이를 꼭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던 기억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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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교류 청원서에 ‘새로운 도전을 하는 교사가 되겠다’는 포부를 적고 2주쯤 지났을 무렵, 서울에서 제주로 옮길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제 남은 건 발령 학교뿐. 집 근처에도 학교가 여러 곳 있었기에 별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장학사님의 단어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얼른 학교 위치를 검색해 보니, 발령지는 무려 집에서 49km나 떨어진 곳(네, 왕복을 하면 약 100km 거리입니다). 게다가 추가로 알게 된 사실은, 그곳이 바로 IB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학교라는 점이었습니다.
밤늦게까지 일하다 사고를 냈다는 그분의 학교는 아니었지만, 검색창을 내려놓은 순간 옆에서 종알거며 노는 세 살, 여덟 살 두 아이에게 저절로 눈길이 갔습니다. ‘복직을 하면 두 아이를 어떻게 돌보아야 하지?’ 걱정이 밀려왔습니다.
그러나 IB 학교에서 1학기를 보낸 지금, 그 걱정은 다행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니, 다행을 넘어선 기회로 바뀌었습니다. 저의 두 아이는 물론, 우리나라 교육이 한 발 더 성장할 힘이 바로 이 IB 교육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IB는 흔히 ‘대학 입시 프로그램’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유치원부터 고등까지 학생을 삶 전체로 길러내는 교육 과정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IB 교육이 존중과 신뢰가 출렁이는 제주에서 먼저 뿌리내린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제가 만난 대부분의 학생, 학부모, 그리고 교사들은 서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로에게 어깨를 내어주고 기대며 존재하는 제주의 돌담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저는 IB 학교에 적응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