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행복이 아이의 행복
“왜 오셨어요?”
제주로 이주한 뒤 가장 자주 들었던 질문입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한 장면을 떠올리며 답했습니다.
“아이들을 잘 키우려고요.”
그 장면은 금능해수욕장의 모래사장에서였습니다. 바다 향기가 물씬 스며든 바람 속에서 아이들이 모래성을 쌓으며 웃고 있었지요. 그걸 보며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웃을 수 있는 곳이라면, 괜찮겠다.’라고요.
그 기억은 제 선택의 이유가 되었고, 동시에 제 마음의 풍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래전 배웠던 ‘접근-회피이론’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이유는 두 가지라고 합니다. ‘하고 싶어서’와 ‘하지 않기 위해서’. 전자는 접근 요인, 후자는 회피 요인이라 부릅니다. 공부를 예로 들자면 ‘성적을 잘 받고 싶어서’ 공부한다면 접근 요인, ‘혼나지 않기 위해’ 공부한다면 회피 요인이 발휘된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육아도 이와 닮아 있었습니다. ‘아이와 내가 즐겁기 위해’ 함께 시간을 보내면 접근 요인에 가깝지만, ‘남들만큼은 해야 한다는 불안’으로 아이를 돌본다면 그건 회피 요인에 의한 육아이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오랫동안 ‘부족하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해 움직였던 것 같습니다. 그게 나의 최선이라고 믿었으니까요. 서울을 떠난 이유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3세 고시’, ‘5세 고시’라 불리는 조기교육의 열기 속에서 나도 모르게 그 경쟁에 휩쓸릴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 물결 속에서 아이를 지키기가 어렵겠다고 느꼈고요.
그래서 떠났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조기 학습’이 아니라 ‘조기 행복’을 배우길 바랐던 것 같습니다. 아이답게 뛰어놀고, 스스로의 속도로 자라며 자신만의 빛을 발견하기를요.
그래서 이제는 다짐합니다. 무엇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살겠다고. 서울의 과열된 경쟁을 피하기 위해 제주에 온 게 아니라, 초록빛 바람과 느린 시간 속에서 삶을 누리기 위해 이곳을 선택했다고요.
다시 그날의 금능해수욕장을 떠올립니다. 햇살에 반짝이던 모래 위에서 천사처럼 웃던 아이의 옆에는 그 아이를 바라보며 같은 웃음을 짓던 제가 있었습니다. 비단 금능해수욕장뿐이 아닙니다. 노란 향기가 방실거리는 유채꽃밭, 감탄이 저절로 터지던 짙푸른 곶자왈, 가을날 노루를 보며 발자국을 옮겼던 물영아리오름, 포근한 흰 이불을 덮은 한라산 능선에서도 아이들과 제 웃음은 이어졌습니다.
이제야 알았습니다. 나는 아이의 행복을 위해 제주에 온 줄 알았지만, 결국 나의 행복을 위해 제주를 선택한 것이었다는 사실을요.
“왜 남으셨어요?”
이 질문은 이제 제 자신에게 가장 자주 던지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 답은 언제나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위해서 남았어요. 행복한 부모에 대한 기억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