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히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친정 엄마에게서든 과거 직장 동료에게서든, “그래서 지금 행복하냐”는 물음을 가끔 받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책 한 권을 떠올립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입니다.
교사로 살다 보면 의외로 자주 듣는 질문이 있습니다.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
추천 대상에 따라 답이 달라지지만, 20대 이후인 사람에게는 대체로 이 책을 추천합니다.
우선 이 책은 활자를 멀리하던 사람이라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구조입니다. 전반부에서는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겪은 저자의 참혹한 체험이 생생하게 묘사됩니다. 그런 내용을 흥미롭게 따라 읽어내려다가 보면 자연스럽게 ‘대체 사람은 왜 사는가?’라는 질문이 흘러나오지요. 그에 대한 답을 저자는 ‘로고테라피’ 즉, 삶의 의미를 찾는 노력을 통해 설명합니다. 처절한 비극 속에서도 낙관적인 태도를 갖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설파하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덮을 쯤이면 독자는 자연스레 삶의 희망을 갖게 됩니다.
이 책을 추천하는 두 번째 이유는 이 책이 제 삶의 많은 순간을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육아와 교직의 무게에 짓눌릴 때 종종 이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빅터는 이런 상황에서도 살았는데, 나도 조금은 버틸 수 있겠다.’라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책을 추천하며 이와 비슷한 위로와 안도감을 누군가에게 주고 싶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이유는 ‘불안해도 괜찮다’라는 말을 전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프랭클은 삶의 동력을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 노력’이라고 말합니다. 완벽한 평온보다 중요한 것은 의미를 향한 긴장감이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불안이 사라진 삶이 아니라 불안을 끌어안고 나아가는 삶. 완벽히 무탈한 순간보다 스스로 선택한 길 위에서 흔들리며 사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살아있게 만든다며 말입니다.
힘들 때 주로 이 책을 읽었기 때문일까요? 제주에 오면서는 이 책을 잘 찾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휴직을 하면 교직 스트레스는 물론 육아 스트레스도 많이 줄어들 테니까요. 실제로 제주 생활을 하면서 많은 고민과 피로감이 옅어졌습니다. 힘든 일이 있더라도 탁 트인 바다에 하소연하며 훌훌 던질 수 있으니까요. 늘 굳건하면서도 인자하게 사람 사는 데를 내려다보는 한라산에게도 기댈 수도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책장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있습니다. 제주를 대안으로 삼았지만, 자녀 교육은 여전히 조금은 불안하고 미래도 여전히 조금은 불투명하기 때문입니다. 당장 오늘 진행될 수업에 대한 긴장감도 여전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그런 긴장감이야말로 삶의 묘미라는 것을요. 그리고 그런 긴장감을 느끼며 나의 감각을 찾아가는 것이 ‘살아 있음’이라는 것도요.
어딜 가도 환하게 불이 켜진 거리도 좋지만, 가을 저녁 여덟 시만 되어도 온통 깜깜해지는 곳. 카드 한 장만 들고 나가면 산해진미를 맛볼 수 있는 상점도 좋지만, 아이스크림 하나 사러 가려고 해도 걷고 또 걸어야 하는 곳. 초등학생 시절부터 눈을 빛내며 수능 영어 시험지를 읽을 수 있는 학원도 좋지만, 눈을 맞추며 예의바르게 인사하는 아이들이 있는 곳. 저는 그런 곳을 조금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요.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자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청아 출판사, p.182”
과거에는 저 문단의 두 번째 문장에 더 눈이 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첫 번째 문장에 더 마음이 머뭅니다. 스스로 선택한 삶의 터전인 제주에서, 이제는 두 번째 인생을 살고 있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제가 찾은 행복의 의미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