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에세이 2 :: 양배추 미음
영어 공부, 정확히 말하면 읽기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능률영어사에서 나온 '리딩 튜터'라는 문제지 덕분입니다. 한두 개의 문단 안에 들어 있는 이야기가 재밌었거든요. 코카콜라의 탄생 과정이든지 광고를 왜 'soap opera'라고 하는지 따위의 알쓸신잡한 내용들이 독해에 흥미를 붙이게 했지요. 반면 그 교재 덕분에 호감을 잃게 된 것도 있습니다. 다름 아닌 '샌드위치'에 대한 호감입니다.
주말에 가끔 엄마가 만들어주시던 샌드위치. 감자를 쪄내고 그 안에 양파, 당근, 계란 등을 섞어서 식빵 사이에 넣어주셨던 그 음식을 저는 무척 좋아했어요. 하지만 리딩 튜터에서 알려준 샌드위치의 유래를 듣고는 그에 대한 정이 뚝 떨어졌답니다. 노름에 빠진 백작을 위해 만든 음식이라니! 그런데 재작년, 아주 짧은 어떤 이야기로 인해 시들었던 정이 다시 새록새록 돋았어요. 누마상 샌드위치에 대한 것입니다.
일본의 도예가인 오누마 상. 그는 아내를 위해 사랑이 듬뿍 담긴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었어요. 그의 아내는 그걸 자신의 인스타에 올렸고 유명세를 탄 그것에 '누마상 샌드위치'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애처가인 누마상이 식빵 사이에 넣은 것은 산처럼 높이 쌓은 생양배추! 짧은 이야기이지만 이걸 읽은 저 역시 마트에서 양배추를 구입했어요. 재료를 가능한 최대한 얇게 썰어서 만들어 본 누마상 샌드위치는 무척 맛있었지요. 맛의 비밀은 샌드위치에 얽힌 이야기, 그리고 달큰하게 아삭거리는 양배추에 있었습니다. 그 맛을 아기에게도 맛보여주고 싶었어요.
재료 : 불린 쌀 15g 양배추 30g 물 180g
도구 : 믹서, 체, 이유식 냄비
과정
1. 양배추를 채 썷어서 끓는 물에 삶기
2. 삶는 동안 불린 쌀을 믹서에 갈기 (물 100g과 함께)
3. 말캉해진 양배추를 믹서에 갈기. (물 10g과 함께)
4. 2,3을 냄비에 넣기 (믹서에 남은 쌀가루는 물 40g 정도로 씻어서 담기)
5. 센불에서 끓이기 (남은 물 30g으로 농도 맞추기)
6. 5를 체에 거르기
태어난 지 1년도 되지 않은 아기에게 아삭거리는 맛을 전해주는 건 불가능한 일이지요. 하지만 아기는 의외로 이 미음을 잘 먹었어요. 아마도 양배추의 달달함 때문인 듯했습니다. 이제는 미음이 아니라 밥과 반찬을 먹고 있는 아기. 하지만 아직도 생양배추는 먹지 못해요. 하지만 언젠가는 이도 모두 나고 양배추는 물론 땅콩이나 호두 같은 딱딱한 재료들도 오도독 씹어먹을 수 있는 날이 오겠지요. 그때 저는 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오누마상처럼 어떤 음식에 따뜻한 이야기를 불어넣게 되었다면 좋겠어요.
엮어 읽기
▷ 슈퍼스타 양배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