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에세이 1 :: 고구마 미음
50kg. 제 몸무게는 아니고요. 올 한 해 동안 저희 세 가족이 주문해서 먹은 한 가지 식재료의 양입니다. 대체 무엇이기에.
찐빵이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 희고 보드라운 살점 속 검은 팥앙금이 모락모락 내뿜는 김. 평평한 엉덩이에 붙어 있는 종이 기저귀를 떼어내어 한 입 베어 물면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이 되지요. 그런 찐빵은 날씨가 아주 추울 때보다는 쌀쌀한 날에 먹는 게 더 맛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눈이 펑펑 내리는 날에는? 군고구마가 아닐까요? 따끈한 우유 한 잔과 함께요. 그런데 올 한해 저희 집은 한여름만 제외하고는 매번 고구마를 구웠습니다.
아기가 생후 6개월이 되었을 무렵부터 만든 미음. 쌀미음과 찹쌀 미음, 감자미음까지는 아기가 비교적 잘 먹었어요. 그런데 다음날 만들어준 애호박 미음은 혀끝으로 밀어내는 아기. 두어 번 더 실랑이를 하다가 울음이 터져버린 아기에게 젖병을 내어주었습니다. 아기가 남긴 음식에 혀끝을 대어 보니 음, 제가 생각해도 이건 아니더라고요. 애호박의 풋내가 유치원생 얼굴에 바른 립스틱처럼 남아 있었거든요. 내일은 애호박을 좀더 푹 익혀서 다시 해볼까 하다가 베란다 아래에 쳐진 주황색 천막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서는 장터의 천막이었어요.
두리번, 야채 코너를 둘러보다가 고구마 한 봉지를 집어 왔어요. 아기도 사람이니 단맛을 좋아할 것 같았거든요. 이튿날, 아기 식사 시간에 맞춰 삶아진 고구마. 네모지게 조각조각 잘라서 쌀과 함께 끓여 체에 거른자 달큰하고 부드러운 미음이 완성 되었지요.
재료 : 불린 쌀 15g 고구마 15g 물 200g
도구 : 믹서, 체, 이유식 냄비
과정
1. 고구마를 깍둑 썰기 해서 삶기 (작게 잘라서 잘라야 빨리 익어요)
2. 삶는 동안 불린 쌀을 믹서에 갈기 (물 100g과 함께)
3. 1,2를 냄비에 넣기 (믹서에 남은 쌀가루는 물 50g 정도로 씻어서 담기)
4. 센불에서 끓이기 (남은 물 50g으로 농도 맞추기)
5. 살짝 끈적해진 4를 체에 거르기
선풍기 바람에 식혀서 작은 입에 넣어주자 냠냠 받아먹는 아기. 곧바로 입을 내미네요. 성공입니다.
그날 이후 아기가 미음을 잘 먹지 않으면 그 다음날에는 고구마를 함께 넣어 주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죽이나 진밥을 먹게 되었을 때에도, 그걸 잘 먹지 않으려고 하면 상비되어 있는 군고구마를 잘라 전채 요리처럼 주었고요. 아기가 이앓이를 하거나 감기에 걸려 다른 식사를 거부할 때에도 아기의 입을 벌리게 한 마법의 식재료였지요. 이처럼 아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찾게 되니 '아기가 안 먹는 걱정'은 많이 줄게 되었답니다. 그렇게 올 한 해 세 가족이 먹은 고구마가 50kg가 되었네요. 지금 상자에 남아 있는 고구마가 몇 개 되지 않으니 숫자는 좀더 커지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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