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들의 시 12
겨울 나던 감자가 허연 발톱을 내밀었다
- 먹으려면 먹어봐 너 죽고 나 죽을 겨!
독 묻은 으름장 따위 못 들은 척
칼로 감자의 발등살 도려내었다
후두둑, 싱크대 위로 떨어지는 발톱들 두려움들 아니 새싹들
그대로 두었다가 사르르 녹는 봄, 흙살 품에 안겨주었다면
팔 뻗고 허리 펴고 주렁주렁 자식도 낳았을 텐데
껍질 벗겨 복보글 냄비 속에 귀양보낸 후
마지막으로 감금시킨 장소는 나의 목구멍
꽃 피우고 뿌리 내리고 하늘 우러를 기회 앗았으니
이젠
감자 두 개 몫은 하며 살아야 하는 건 아닌지
그 정도의 삶은 살다가야 하는 건 아닌지
/ 위대한 삶은 감자 (2015. 1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