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과 펜 하나로 바르셀로나 소년 피카소를 담아오다.
이전 시리즈부터 읽으려면?
<#1. 유랑카페가 필요 없는 바르셀로나 여행 준비 총정리편>
https://brunch.co.kr/@winniethedana/10
<#2. 출국, 익숙함을 떠나는 연습>
https://brunch.co.kr/@winniethedana/11
<#3. 바르셀로나식 첫인사, '우유 넣은 커피'>
https://brunch.co.kr/@winniethedana/
바르셀로나로 돌아가자. 전편에서 언급한 일정대로 첫째 날은 여행 전 예약해놓은 '피카소 투어'의 날. 이름처럼 가장 하이라이트는 '피카소 미술관 (Museu Picasso Barcelona)' 관람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 중 하나인 피카소의 초기작들이 모인 곳.
자유로운 분위기의 보른 지구를 지났다. 가이드님의 안내에 어디에 큰 건물이 있나 하며 두리번대기 시작. "피카소"의 명성 정도면 탁 트인 장소에 아주 으리으리한 모습으로 있을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웬걸. 가이드님은 작은 중세 시대스러운 골목을 굽이굽이 들어가셨고, 갑자기 전혀 예상치 못한 모습의 조용한 미술관 하나를 만났다.
그곳이 바로 피카소 미술관이었다.
알고 보니 14세기 건축된 귀족 저택 몇 채를 개조해 만들었다고. 미술관에서 흘러나오는 고풍스러운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차분해지는 미술관이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거의 석재로 지어져 단단하고 견고한 느낌.
또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길게 늘어선 매표소의 줄이 유럽 곳곳에 있는 피카소 미술관 중 가장 인기 있는 곳이 바르셀로나라의 피카소라는 얘기를 뒷받침하는 것 같다.
들어서자마자 30분 정도면 다 관람할 수 있겠냐는 가이드님의 질문에 나는 작은 목소리로 "40분 주시면 안 되나요..." 요청했다. (제발~~~)
아직 전시실이 어느 정도 큰지 가늠은 안되지만 평소 여행지의 미술관에서 3-4시간 정도는 가뿐히 시간을 보내는 나기에 사실 40분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영어로 다 듣고 읽어야 하는 건 오래 걸린단 말이다!!) 하지만 오늘 투어가 아직 끝나지 않아 다음 장소로 이동하려면 40분이 최대라고. 으아아아.
숨 가쁘게 서둘러 입장하는 수밖에.
"바르셀로나에서 모든 것은 시작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내가 얼마나 나아갈 수 있을지 깨달았다."
Pablo Picasso
스페인의 작은 마을, 말라가 출신이다. 미술 선생님이자 새 그림을 전문적으로 그렸던 아버지의 피를 받아 어릴 때부터 천재적인 미술 실력을 타고났다. 평생 그림을 그렸던 피카소의 아버지가 자신이 그리다 만 새 그림에 13살 피카소가 새의 발을 완성해놓은 것을 보고 붓을 놓았을 정도. (피카소 미술관에 이 작품도 있다.) 이후 피카소를 대단한 화가로 만들기 위한 아버지의 열정 덕분에 항상 좋은 교육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었지만 정작 피카소와 아버지의 부자 사이는 좋지 않았다고 한다.
바르셀로나는 그가 고향 말라가를 떠나 처음으로 가족과 함께 정착한 도시였다. 13살의 어린 나이부터 22살까지 즉, 피카소가 소년기와 청년기의 초반 시기를 보낸 곳이 바르셀로나다. 그래서 다른 피카소 미술관과 달리 바르셀로나 미술관에는 전성기의 작품보다는 2천2백여 점의 전 작품 중 소년 피카소의 초기작이 비교적 많다.
피카소의 그림 중 뉴욕 MOMA에서 보았던 'A Girl befor A Mirror (거울 앞의 소녀)'를 정말 좋아한다.
감동하는 작품의 경우 보통 자신을 투영해서 보는 경우가 많은데, 나에게 이 작품이 딱 그랬다.
그림을 보면 거울 앞의 소녀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겉모습인데 반해 거울 속 모습은 어둡고 암울한 모습. 피카소가 그 이상의 심오한 것을 담아내려 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 모습이 그때의 나를 꼭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대학교 3학년 때 떠난 미국. 함께 살았던 호스트 패밀리와 외국인 친구들은 나를 아직도 아주 밝고 명랑한 모습의 아이로 기억한다. 하지만 정작 그때의 나는 가족과 떨어져 오랫동안 지내며 정말 많이 외로웠었다.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끝난 연애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그렇게 밖에서 보기에는 가장 유쾌하고 즐거워 보이던 시절, 오히려 속은 향수병과 외로움에 끝도 없이 어둡고 암담했다. 다시 생각해도 참 힘든 시기였다.
그런 내가 학기를 마치고 귀국 전 떠난 여행이 바로 뉴욕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거울 앞의 소녀'는 겉과 속이 달랐던 아이러니한 나의 거울같았다.
아직도 이 그림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던 기억이 난다.
한편, '거울 앞의 소녀'의 그림체를 보면 알 수 있듯, 나의 기억 속 그는 '소위 어린아이 같다는' 큐비즘 피카소였다.
하지만 첫 전시실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내가 만난 그는 그의 아주 일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라파엘로처럼 그리기 위해 4년이 걸렸지만 아이처럼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평생이 걸렸다."
바르셀로나의 미술관에 있는 그의 초기작들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말처럼 그가 얼마나 어렸을 때부터 천재적인 실력을 타고났는지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 대다수다. 작품들이 소년의 피카소는 이미 라파엘로의 실력을 갖췄었다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전시실 초입에 있는 대작 'Science and Charity(과학과 자비)'.
이 작품은 우선 그 크기에서 관람객을 압도한다. 덕분에 붓 터치, 음영 표현, 인물의 표정 하나하나를 가까이서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 들여다보면 볼수록, 인물의 표정, 빛의 표현, 세밀한 사물 묘사가 대단히 수준급이다. 그런데 이것이 겨우 15살의 소년의 손에서 탄생한 작품이라니 믿기지 않을 뿐. 결국 이 작품은 스페인 마드리드 국전, 말라가 미술공모전에서 금상을 수상, 그해 파리 국제 만국박람회에도 전시되는 성공을 이뤘다고 한다.
15살 피카소가 이 그림에 담으려고 했던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좌상향의 화살표를 그려 좌우로 두 면을 나눠야 한다. 그랬을 때 아래 면에는 '과학'을 상징하는 의사가, 윗 면에는 '자비'를 상징하는 아이를 안은 수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두 개념을 향한 그의 의견이 드러나는 곳이 바로 '환자의 손'이다. 의사가 잡고 있는 손은 죽은 자의 것처럼 새까맣고 힘이 없는 손이지만 수녀를 향한 손은 생기 넘치며 어떤 동작을 취하고 있다. 즉 과학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종교의 힘보다는 강할 수 없다는 것을 표현했다고 한다.
개념적 관점에서도, 기술적 관점에서도 우리가 아는 '삐뚤빼뚤' '조각조각의' 피카소는 그의 생애 중 한 부분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5살의 소년 피카소는 이미 화가로서의 경지에 도달했었다는 것 또한 확실해졌다.
이렇게 내가 몰랐던 피카소를 발견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 전체 전시의 1/4쯤 봤을까.
투어팀과 입구에서 만나기로 한 40분이 벌써 다 되어가고 있었다. 안 되겠군. 결국 투어팀을 만나 개인적으로 오늘 투어는 여기까지 하고 이곳에 남겠다고 했고, 결국 ART PASS (바르셀로나 미술관 패키지)로 새로운 티켓을 끊어 다시 입장했다.
오늘에서야 발견한 낯선 모습의 피카소가 너무 궁금했던 탓이다.
다시 입장한 뒤
이제야 마음 편히 수첩을 꺼내 들었고
찬찬히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저기요. 죄송한데 뭘 그리시는 거예요?"
"네?"
"아니 한국분이신 것 같은데 계속 뭘 그리고 쓰고 하시길래 궁금해서요."
"아.. 별거 아니에요.. 사진을 못 찍어서 그냥 기록 삼아....."
어떤 한국인 두 분이 다가와 계속 끄적대고 있는 나를 궁금히 여긴 것이다. 미술 학도인 줄 알았다고. 스케치한 걸 보면 절대 그런 오해를 안 했을 텐데 ㅎㅎ
그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거 특이한 건가?
끄적이고 있던 낙서를 설명하기 전에, 먼저 여행 수첩에 대해 설명해야 할 것 같다.
나홀로 여행을 떠나본 사람은 안다.
야심차게 완전한 자유로움을 찾아 떠났으나, 때때로 외로움이 찾아오기도 한다는 것을 말이다. 아마 멋진 풍경을 보거나 너무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눈 마주치며 함께 감탄해 줄 누군가 없기 때문.
나는 그 또한 나홀로 여행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지만, 대답해줄 누군가는 아니더라도 들어줄 친구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여행에서는 손바닥만한 수첩이 그런 친구의 역할을 한다.
본래 그런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첫 나홀로 여행지였던 뉴욕은 대부분의 미술관과 브로드웨이 공연이 촬영 금지다.
문제는 그 대단한 것들을 관람하면서 어딘가 남기지 않고 돌아가기에는 너무나 아쉬웠다는 것. 우연히 내 가방에는 얼마 쓰지 않은 단어장 수첩이 있었고, 그때 그 수첩을 꺼낸 것이 시작이었다.
심지어 깜깜한 브로드웨이의 공연장에서도 뭘 그렇게 주저리 주저리 많이 썼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이 나름의 원칙이 되었다. 혼자 배낭을 메고 어딘가 떠날 때가 되면 이제는 자연스레 문구점을 들려 수첩 하나를 산다. 딱 손바닥만 한 크기가 좋다. 그리고 여행 내내 배낭 앞 주머니에 펜과 함께 넣고 다니다, 가지고 돌아가고 싶은 감정과 생각이 생길 때마다 수첩을 꺼내는 것이다.
특히 여행지의 미술관을 들리기 좋아하는 나에게는 정말 유용한 친구다. 그리고 그곳이 촬영 금지라면, 수첩의 가치는 더욱 극대화된다.
이번에 나와 여행을 함께한 친구는 하얗고 손바닥만한 이 수첩이었다.
말했듯 수첩에 기록하는 것이 나만의 특별한 방법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여행 중에 미술관을 방문하게 된다면 그 시간을 십분 더 즐길 수 있는 방법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미술을 전공한 분들의 전문적인 기록이 아닐지어도, 나와 같이 그림에 큰 조예가 없지만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시도해볼 만한 재밌는 방법이다.
장황한 제목 (바르셀로나의 피카소를 수첩에 담아오는 것)을 완벽히 실행하기에는 내 그림 실력은 형편없다. 하지만 수첩에 낙서를 하는 것에는 나에게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1. (미래) 마음에 남는 그림을 돌아와 찾아보기 위한 기록.
2. (현재) 그 당시의 내가 어떻게 느꼈는지 기록.
그 미술 작품이 중요하다기보다. 그 시간, 그 장소에 머무른 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수첩을 통해 지금 눈으로 보고 있는 것과 그를 통해 느끼는 생각들을 최대한 내 손으로 옮기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피사체를 완벽하게 담아내는 카메라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나를 통해 해석되는 모습과 내가 집중했던 요소를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기에 의미가 있다.
그리고 미술관이라고 해서 여행 수첩에 기록하는 특별한 방법은 없다.
내가 좋았다고 생각하는 그림은 최소한 제목을 적어온다. 만약 기념품 가게에 그 그림의 엽서가 없을 경우, 돌아와서 찾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
그림의 세세한 부분에서 특정한 생각이나 느낌이 든다면 기록하기 위해서 밑그림 정도의 구조를 그린다.
그 위에 그 당시 내 눈에 특별히 눈에 띄는 부분을 표시하고 느껴지는 생각들을 담는다.
이렇게나 간단하다.
작품명 : Science and Charity (과학과 자비)
(낙서 해설)
'과학'을 상징하는 의사는 아래 시계 같은 물체를 내려다보는데, 그 시선의 방향으로 인해 본인은 환자에게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좌절의 느낌을 준다. 반면 오른쪽 '종교'를 상징하는 수녀는 마치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모습으로 보인다. 실제로 미술관에 전시된 연습한 습작을 보면 수녀에게 안긴 아기는 확실히 아기 예수의 모습과 흡사한 느낌. 또한 습작에서부터 수녀가 건네주는 컵이 항상 등장하는데 이것이 특정하게 어떤 것을 상징하는지 알고 싶다. 중앙의 환자의 시선마저도 수녀를 향함으로서 피카소가 말하고자 한 '종교(자비)'의 상대적인 큰 영향력이 느껴진다.
작품명 : The dwarf (난쟁이)
(낙서 해설)
파리에 처음 발을 들인 피카소가 그린 작품. 피사체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비정상적이고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난쟁이 광대. 그 존재의 반해 옷은 서커스단처럼 화려하고 장식이 많다. 그 대조에서 오는 기묘한 느낌도 좋다. 또한 사선으로 배경을 나눴을 때 우상향에서 엄청나게 강렬한 밝은 색감으로 시작해 좌하향으로 갈수록 어두워지는 대조가 보인다. 전체적인 붓터치나 사용한 색채의 심한 강렬함이 기묘함을 더 극대화시킨다. 그 기묘함 가운데 관람객을 바라보는 난쟁이의 눈동자는 살아있는 듯하다.
작품명 : Female Nude (여성 누드)
(낙서 해설)
가장 친한 친구의 자살로 시작된 피카소의 청색시대 작품이다. 여성의 나체를 그린 것으로 어린 모습의 여자가 팔을 내뻗고 정면을 보는 모습. 정작 모델은 아주 아무렇지 않고 대수롭지 않은 정적인 눈을 하고 있다. 고흐의 청색과는 또 완전히 다른 피카소만의 우울한 청색이 차가운 분위기와 피사체를 향한 건조한 시선을 극대화한다.
작품명 : Blanquita Suárez (블랑키타 세레즈)
(낙서 해설)
춤을 추는 여인을 그린 듯. 재밌는 것은 여자의 몸통이 우리나라 백자나 새의 몸통으로 보였다. 여인의 발은 퍼즐처럼 다리 한쪽에만 4가지 색으로 구성되어있다.
그 외의 낙서들
살짝 다리가 아파왔다. 사전에 아무 정보 없이 방문했기에 재밌는 그림들이 이 이상 있으려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힘들면 피카소고 뭐고 없구나 하는 찰나,
나에게 뒤통수를 또 한 번 친 작품. 바로 마지막 전시실에 위치한 <시녀들(Las Meninas)> 연작 44부다. 워낙 벨라스케스의 원작을 사랑하는터라, 이 작품을 만나고서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이걸 여기서 볼 수 있다니.
무려 한 점이 아니다. <시녀들>이라는 이름으로 그린 44점의 작품이 연작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듯 모두 다른 44점이었다. 그리고 특유의 아이 같은 그림체와 익살스러운 표현이 다른 작품보다 훨씬 극대화되어있었다. 나이에서 오는 연륜, 그의 습작, 연작 개수만큼이나 풍부한 표현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그 대단한 작품성과는 별개로, 색동옷 같은 색깔과 점, 선, 면이 뚜렷이 보이는 피카소의 아이 같은 그림체는
이상하게도 나의 비루한 그림 실력을 토닥이는 것 같았고, 나도 모르게 용기 내어 한번 따라 그려보고 싶게 했다.
큰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나도 저 귀엽고 재밌는 선들을 그려보고 싶었다. 다른 그림들에 담긴 내 시선을 이야기 했듯 말이다.
요상하게 생긴 시녀, 이유는 모르겠지만 상대적으로 엄청 큰 크기를 차지하고 있는 광대, 램프의 양쪽 전구처럼 단순화된 쌍둥이 시녀, 찹쌀떡같이 귀엽게 변한 강아지, 음료수 '쿠우'표정을 하고 있는 액자 속 아버지, 달리 같은 재밌는 수염으로 쾌활한 유령처럼 그려진 벨라스케스
그렇게 내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비친 대로, 느낀 대로 그린 낙서.
다른 전시실에 있던 피카소의 도자기 작품은 또 어떠한가. 대부분의 그릇은 졸라맨 같은 사람 얼굴이며, <시녀들>에서 본 '쿠우' 표정이 그려진 얼굴이 계속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여자 가슴을 상징하는 요소는 절대 빠지지 않는다.
'이 아재는 왜 이렇게 장난기가 많아'
라고 얘기하면 엄청난 예술가인 피카소를 너무 얕잡아보는 건 아냐? 라고 할지도.
하지만
이걸 보고 안 귀여워할 사람, 누가 있나요?
그렇게 장장 3시간 동안 끄적거리다, 웃다, 낙서하다 보니 마지막 전시실을 지나 어느새 출구였다.
너무 오래 본 탓에 기념품 가게에서도 마지막 손님이었고, 미술관 직원 모두가 나만 나가기를 바라보고 있는 중... 쫓겨나듯 미술관을 나왔다.
그래도 오늘 확실히 소년 피카소라는 친한 친구를 만든 것 같은 생각에 벅찬 기분.
적어도 그 날 내 수첩에 담긴 그는
뉴욕에서 첫눈에 반했지만 조금은 어려워 보이던 첫 모습과는 달리
어른 뺨치는 실력이었던 어린 날에도,
할아버지 피카소일 때도,
바르셀로나의 익살스러운 소년의 마음 그대로를 간직하며 그 자리에 있었다.
그래서 였을까?
아무 계획 없이 퇴사를 하고, 여행기간을 무작정 늘려버리고, 내일이 없는 것처럼 이국 땅에서 현재를 즐기고 있는, '철없는' 나는 소년 피카소에게 큰 위로를 받았다.
미술관 한가운데 서서 낙서를 하며
그저 미소 짓고 있던
'철없는' 내 모습이 꽤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날 이 후
내 수첩을 탄 채, 그는 바르셀로나를 벗어나
이제 우리 집 책꽂이에 살림을 차렸다.
3시간 내내 나를 즐겁게 했던,
대단하면서도 이 익살스러운 소년을 데려왔으니.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