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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E와 극 I 가 만나면

견들의 사회생활

by 신버터

극 E와 극 I 가 잘 지낼 수 있을까?


어린 시절에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고 하면 사실 그 관심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집요하게 가까이 다가오면 싫었다. 나는 약간의 거리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가 거리를 두지 않는 사람이 아내다. 미안한 말이지만 나에게는 아내가 전부다. 자녀도 강아지도 나에겐 거리가 필요하다.


밀리는 극 E라서 자꾸만 나에게 다가왔다. 첫날 밀리가 내가 침대에 누워서 하품을 할 때 어디서 날아왔는지 침대 위에 올라와 나의 입속으로 자신의 입을 넣고 혀로 핥았던 (개와 처음으로 키스를 ㅜ.ㅜ) 경험 이후로는 침대에서 하품을 하지 않는다.


버터는 극 I라서 항상 내가 보이면 도망가거나 숨었다. 아무리 거리를 두기를 좋아하더라도 2년 이상 같이 지낸 나랑 거리를 두는 건 썩 좋지 않았기에, 오히려 역으로 내가 가까이 가는 편이다.


그럼 이 두 마리의 사이는 어떨까?


버터는 밀리를 절대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 사실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하지만, 밀리는 반대다. 계속 버터를 장난 삼아 물고 난리다.


처음에는 돌부처처럼 가만히 있던 버터도 어느 순간 가만히 있지 않고 짖어대기 시작했다. 근데 웃긴 건 공격성이 전혀 없는 Showing이었다는 것이다. 한두 번 그렇게 하고 다시 먼산 바라보듯이 다른 쪽을 바라본다. 밀리는 우리가 말리기 전까지 또 짓궂게 장난을 친다.


밀리는 약간의 분리 불안이 있는 강아지다. 그래서 사종일관 사람에게 엄청 달라붙어 있다. 조금이라도 자기에게 관심 가져주지 않으면 짖기 시작한다. 그래서 조금이라고 아내가 버터를 쓰다듬어 주거나 이뻐라 하면 짖기 시작한다.


색깔도 흑백이고, 성격도 흑백인 결코 섞일 것 같지 않은 이 두 마리의 강아지는 2년의 시간 동안 좋든 싫든 함께 지냈다.


그리고 이제는 상당히 의지하는 관계로 발전하게 되었다.


어떤 포인트에서 이게 느껴지는가 하면, 버터가 밀리의 행동을 따라 할 때가 그렇다.


1. 침대 위에 올라와서 자기

2. 밀리가 쉬한 자리에 버터가 쉬하기

3. 똥 싸고 나서 뒷발질하기

4. 간식 줄 때 앉거나 엎드려 하기

5. 아내가 집에 돌아오면 꼬리 흔들면서 짖기

6. 식사 시간에는 아들 옆에 와서 앉아있기 (가끔 나눠주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


위의 모든 행동들은 버터가 하지 않았던 행동들인데, 밀리의 행동을 따라 하기 시작한 것들이다.


그리고, 나란히 같은 방향을 보고 같은 자세로 같이 앉아 있거나 누워있다.



전혀 어울릴 수 없을 것 같던 두 마리의 강아지가 그토록 다른 성격에도 불구하고 행동을 공유하고, 닮아가는 과정을 바라보는 것은 미소를 짓게 한다.


여전히 똑똑한 밀리는 버터의 간식을 빼앗기 위해 짱구를 굴리고 있지만, 어느새 버터도 나름대로의 전략을 터득해서, 간식을 물고 밀리로부터 떨어진 곳으로 견제하며 먹기 시작했다.


다른 환경에서 자라다가 이제 같은 환경 안에서 서로 맞추어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버터와 밀리...


어쩌면 직장에서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사회생활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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