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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의 환상과 실제

강아지 입양임 (사람 아님)

by 신버터

강아지의 입양을 40년 이상 미루었던 (?) 내가 입양을 결정하게 된 것은 아내가 강아지를 보면서 기뻐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강아지를 돈 주고 사는 것에는 차이가 없지만, 입양을 한다는 것은 사연이 있는 강아지를 키우기로 결정한다는 것이고, 그에 따른 자격 심사가 있다.


사실 처음에는 그냥 쉽게 독일에서 돈을 주고 강아지를 사거나, 아니면 지인을 통해 아기 강아지를 분양받을까도 생각했었는데, 아는 지인이 한국에서 독일로 입양해 온 유기견을 키우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유기견 입양이라는 옵션도 고려 대상에 추가되었던 것 같다.


내 자식도 셋이나 되는데 강아지를 어떻게 키우냐라는 논리로 버티었던 40년 이상의 세월은 자녀 3명인 지인이 강아지를 키우게 되면서 무너졌다.


그냥 독일에서 입양하면 되지 뭘 한국에서 비행기까지 태워서 데리고 오는가라는 나의 논리는 설득력 있었고, 독일 입양 센터를 통해 강아지 입양의 수속을 밟기로 했다.


전에는 몰랐는데, 센터에서 자원봉사자가 우리 집을 방문해야 한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은 마음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아주 돈 많고 도도하게 생긴 덩치 큰 아주머니 한 분이 오셨다. 명품 백을 메고 오셨는데, 자원 봉사자 치고는 상당히 거만하게 신발도 안 벗고 집안을 두리번두리번 살피기 시작했다.


더 큰 문제는 대형견 한 마리가 같이 왔다는 것이었다.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난리 법석을 치는 바람에 아주 정신이 쏙 빠졌다.


하지만, 최대한 상냥하게 우리는 강아지를 키워보고 싶다고 이야기했고, 웃으면서 대화가 잘 끝났다.


자원봉사자와 강아지가 집을 떠나기가 무섭게 문자 한 통이 왔다.


"불합격"


뭐지? 왜지?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지만 사유를 읽어보니 이랬다.


1. 강아지를 보고 아무도 강아지를 안아주지 않았음

2. 거실에서 밖으로 나가는 문이 있어서 도주와 사고의 위험이 있음


평생을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없고, 남의 강아지에다가 그 큰 강아지가 물까 봐 무서워서 감히 접근조차 어려웠는데, 이게 Test였다는 사실에 상당히 불쾌했다.


여하튼 독일에서 우리 가정은 강아지 입양이 거절되었고, 이로 인해 한국의 강아지를 입양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버터와 밀리 두 마리의 강아지를 입양해서 잘 키우고 있다.


완전 초짜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우리 강아지들은 이렇다.


1. 태어나면서 키운 강아지에 비해 식성이 까다롭지 않다.

2. 트라우마가 종종 있어서 (사람이나 다른 강아지 들) 적응기간이 좀 많이 걸릴 수 있다.

3. 건강 검진과 적응 훈련, 중성화 수술 (독일로 입국을 위해서는 필수)를 마치고 비행기를 타기 때문에 특별히 할 일이 없다. (정기적으로 예방 접종이나, 치과 치료 정도만 필요)

4. 배변 훈련도 나름 하고 오기 때문에 어렵지 않다.

5. 소화력이 좋아서 배탈이 잘 안 난다. (크고 건강한 똥을 하루 두 번씩 싼다.)

6. 돈은 생각보다 많이 들지 않는다. (사료, 접종비 정도이다.)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해 두려움이 있거나 분리불안이 있기는 하지만, 사랑받기에 조금도 부족함 없는 버터와 밀리다.


입양 전에 가장 마음에 걸렸던 점이 개를 키우면 아내의 사랑이 반으로 줄어든다는 것이었는데, 이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확실히 나보다는 개를 좋아한다. (표정에서 드러난다.)

하지만, 내가 개를 산책시키면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 (개 덕분에 점수를 딸 수 있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버터와 밀리를 산책시키면서 함께 걷고 데이트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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