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욕구와 관계

적당한 거리감

by 스티븐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누구와 어떤 관계인가. 그 관계는 내게 어떤 의미인가.


그런 관계

의 후배가 있다. 인간관계가 지천명을 흐르는 중년이라면 한번쯤 고민해 봤을 주제다.

대화나 함께하는 모든 것들의 과정이나 결과의 의미에 집중하지 못한다. 그저 지금 행하고, 먹고, 지내는 오브제 자체에 의미를 둔다. 그리고 그것을 과장하거나 확장하기 바쁘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그 사실을 알리기 바쁘다. 일종의 과시나 관심욕구로 여기저기 실시간으로 그 오브제를 알리기 바쁘다. 오늘은 누구와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가 아니라 누구랑 만난 것 자체가 자랑거리인 후배다.


이럴 경우 그 시간과 결과엔 별 의미가 없다. 오로지 소문의 양상에 기여하고, 피하고,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은 착각이다. 모두들 자신의 삶에 바쁘다. 특히 중년이거나 중년으로 가는 시간은 더욱 그렇다.


외로워 보이는 사람과 외로운 사람

두 사람의 양상은 전혀 다르다. 알고 보면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은 외로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대부분 실제 외롭지 않다. 혼자 지낸다고 중년 이후의 삶이 외롭거나 힘들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이들 그렇게 바라본다.

실제 외로운 사람은 케어하기 어렵다. 위에서 예로 든 것처럼 오브제에 집중하지 못하고 인정과 과시의 경향이 짙을수록 관계에 의존한다. 관계에 의존할수록 수동태가 되며 스스로 '을'이 되기 쉽다. 그리고 그 '을'의 관계에 스스로 힘들어하고 어려워한다.


가장 케어가 안 되는 층이 중년층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주변이 그렇다. 초년의 가족들을 케어해야 하고, 노년의 부모들을 모셔야 한다. 스스로 가진 경제력엔 변화가 일어나며 이 복잡한 상황에서 마음을 토로할 방법을 찾기 쉽지 않다. 스스로 그걸 털어내지 못하면 상실과 외로움이 다가오고 이내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

이런 이일 수록 그 토로의 방법이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방법을 찾거나, 가족과의 깊은 대화를 통해 방법을 찾길 권한다. 중년일수록 그렇다. 잠시 글로 써서 자신의 마음을 정리해 보시라. 그리고 그 마음을 자녀와 아내 혹은 남편과 깊은 대화 주제로 이야길 나눠보신 적이 있는가.


독립적 성향이 답인가

혼자서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 주변에서 보신 적 있으실 게다. 내가 좋아하는 걸 똑같이 좋아하는 사람이 필요하긴 한다. 정작 혼자의 마음이나 혼자선 할 수 없는 탁구 같은 오브제도 있으니까. 조금 비틀어 생각해 보자. 어찌 보면 친구가 필요해서 친구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 필요한 걸 같이 하는 사람을 친구라 여기기 쉽다. 정작 본인은 의존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친구가 필요 없는, 안온한 상황에 놓인 사람은 절대 의존적이지 않다. 그렇다. 친구가 필요한 것에 의존하는 사람일수록 혼자 뭔가 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잘 지내는 사람들이 꼭 독립적 성향으로 바뀔 필요는 없다. 그걸 강권할 의도는 1도 없다.

중년은 바뀌기 어렵다. 의존적 사람이 독립적으로 바뀌기 쉽지 않을뿐더러, 그럴 수 없다. 아주 낮은 확률로 바뀌는 경우가 있긴 한데 대표적으로 이렇다. 실제 우울증에 걸 정말 독립적으로 바뀌어 버린 상항이거나,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는 환경에 살고 있을 때 혹은 사람이 아닌 술이나 다른 것에 의존하는 경우. 그렇다. 대부분 부정적 상황이다.


의존적인 건 나쁜 것인가

의존적인 게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독립적 성향도 분명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삶은 당신을 오롯이 평안하게 하지 않는다. 살아보니 그렇고 선험자들의 조언도 그렇다. 생각해 보자. 나이 들어 관계에 '집작'한다는 것은 이미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 아닐까? 의존하는걸 신경 쓴다는 건, 사람들이 이미 멀리하는 상황에 놓인 것은 아닐까? 우울증을 피하기 위해 - 우리나라 40~60 중년 네 명 중 한 명이 우울증이거나 우을 증세를 가지고 있다는 정신학과회 조사결과도 있다 - 우울증을 유발하는 관계를 선택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스스로 경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좋은 관계

다시 강조하건대, 고독을 견딜 수 있는 것과 또 교류할 수 있는 것은 고독의 의미를 알기 때문이다. 익숙해져 있다면 그렇지 않은 것도 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관계에 피로도를 느끼는 순간 나쁜 관계로 가는 중년이라는 것이다. 속된 말로 중년 이후 나쁜 성향의 사람과 어울리지 말아야 한다. 피로감은 그 사람과 동일시 하계 되고, 불필요하고 부정적 관계가 '친구'라는 의미로 퇴색되며, 결국 동화되어 가기 시작되어 나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반대로 좋은 사람과, 긍정적인 사람과, 생산적인 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첨언컨데, 생산적이라고 해서 기회를 찾으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중년 이후 내가 지금 하는 일과 성취감이 부족하거나 싫어서 다른 기회를 바란다면 '친구' 보다는 '선배'의 관계에서 찾는 것이 결과가 좋더라.

'즐거움'과 '사랑'의 의미가 아니라 '기회'와 '돈'이 필요하다면 혹은 그러한 의미를 만들기 위한 게 목적이고, 수단과 방법을 제공해 줄 만한 사람들을 찾는 거라면 중년이 될수록 '친구'가 아니라 '어른'을 찾길 바란다.


인정욕구와 자존감

인정욕구는 자존감과 반비례한다. 인정욕구가 높을수록 사람은 '의존적'이고 '관계'의 의미보다 '오브제'와 '수단'에 집중한다. 자존감이 높을수록 '수동'적인 '갑'의 갑을 추종하는 강요의 독단에 빠지기 쉽다.

답은 인정욕구와 자존감의 밸런스다. 어떻게 바뀌어야 만 한다는 것도 '당위의 의미'가 아니라 '집착'이다.

어느 정도 밸런스를 찾는 데 있어 도움이 되는 것이 바로 혼자 하는 것, 혼자 있는 것, 사색하는 것을 잘하는 능력이다. 그 방법을 찾는데 도움이 되었던 책을 하나 공유한다.


중년으로 가고 있거나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중년'들에게 권한다. 탐독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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