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일기 #381
눈은 내렸지만, 아이젠을 써야 할 정도로 두텁지 않다. 얕고 미끄럽다. 총총 걸음으로 오르고 내린다.
딸아이는 기말고사를 잘 보았다고 스스로 만족해하는 것 같아 흐뭇했고, 오랜만에 동창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아내는 무엇이 반가웠는지, 아니면 대화가 즐거웠는지 약간은 상기되어 있다.
코어 운동으로 기본 근력을 세운 후 출발. 오늘도 음악을 들으며, 밀린 협의와 시점을 고민. 일은 일로서의 가치 수준에서 더 확장되어야 하지만, 한 해의 농사를 연출된 장면으로 만들어내는 컨퍼런스 같은건 달갑지 않다. 과장된 포장은 결국 드러나기 마련이니까.
연습하지 않은 과정은 결국 부자연스러운 거니까.
나 스스로의 마음을 다독이는 시간은 오로지 능선을 타고 걸을 때 인듯. 능선에서 만나 잠시 지나치는 사람들 사이사이로 불어오는 겨울바람. 관계도 리커버리 하라는 듯 꽤 매섭게 보챈다. 바람에 떨어진 나뭇잎은 눈아래로 가라앉았고, 얇게 펴바른듯 한 야자매트 위에는 쌓인 눈 위로 솔나무 잎만 누워있다. 그리고 나는 또 미끄러지지 않겠다고 솔나무 잎이 고맙다.
오늘 저녁엔 자독인 마음에 영양분을 더할 겸 아내와 영화를 한 편 봐야겠다.
오늘도 그렇게 열심히 걷고 또 오르고 또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