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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븐 Dec 17. 2022

단 한 푼도 쓸 수 없었다

등산 일기 #383

오늘은 현중 형님과 남한산성행.

보통 광교산이나 청계산을 오를 땐 내차로,

남한산성은 현중형님 차로 이동해 주차 후 오른 듯.

아침 일찍부터 눈이 내리고 수북이 쌓였다. 며칠 전 내린 눈에 덧쌓인 눈은 걷기에 버거울 수준. 해서 들산 지화문(남문)부터 아이젠을 착용하고 출발한다. 밟히는 눈에서 소복소복 소리가 나니 초입부터 즐겁다.

베이스 레이어, 긴팔 등산 셔츠, 플리스, 방풍의 네 겹이나 껴입은 상의에 32L 등산 가방 안엔 덕다운 라이트 재킷까지 챙길 정도로 춥다. 특히나 남한 산성 분지 같은 성곽길을 걷다 보면 예상보다 바람은 매섭고, 남북문은 특히나 응달.


누적 적설량이 예상보다 많아 아이젠으로 밝고서도 들린듯한 느낌으로 스윽스윽 밀리는 접지 감에 좌익문(동문)으로 가는 초반 길부터 폴까지 꺼내어 들었다. 어쩌면 동장대지로 오르는 고각 업힐에서 체중의 40%까지 경감된 큰 도움이 되란 예지였을지도 모르겠다.

등산 동호회 그룹이 꽤나 보이던데 역시나 연령대도 고각이라 동행하거나 지나기에 무리는 없다. 하지만 어찌나 아우성인지긴 걸음 같이 하기엔 부담스러워 얼른 지난다.


전승문(북문)을 지나 수어장대에 다다르기까지 총 10km에 가까운 등락을 반복하고 나서야 운동 좀 한 느낌.

외투 밖 바람은 계속 매섭다 보니 땀을 그리 흘렸는지 몰랐다. 좋아하는 수제 두부집에 도착해서 상의를 탈의 하면서나 놀랄 정도로 흥건하게 젖었음을 알아버렸다.



남한산성을 찾을 때마다 들르는 이 맛집 ‘두부만드는집 순두부 짬뽕 남한산성​’은 오늘도 향긋한 내음 풍기는 능이버섯 두부전골로 얼어버린 온몸을 따듯이 감싸 안아줬고, 동그란 보자기 두부는 보드라운 궁둥이 같은 모양새를 해가지곤 달콤 말랑한 식감을 선물해 주었다.



돌아오는 길. 단 한 푼도 쓰지 않은 사건 때문에, 민망했지만 그런들 어떠랴. 우리 다음 산행에선 내가 다 써버리면 될 것을.


분명히 발언컨데!!! 단언컨대!!!


건조기에 돌린 방풍복 안주머니 자크 레버가 날아간 바람에, 채운 후 열어내지 못한 내 지갑의 진실. 사전 그려둔 빅픽쳐 전술은 아니었단 걸 현중 형님은 굳게 믿어주실 거라 의심하지 않는다!! 풉~~~

P.S 집에 와서 롱노우즈와 타이 케이블 콜라보로 겨우 열었단 말이다!!! 다음번 등산부턴 롱노우즈도 들고 다녀야만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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