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은 가족 모두의 것

우리 집에서 우리 집으로. 다시 이사하기 #1

by 스티븐
1.6 평방 제곱미터


인간에게 마땅히 주어져야 할 공간. 서로 간의 이 최소한의 공간이 보장되어야 심리적 안정감을 가지는 게 인간이란다. 어쩌면 더 좁은 공간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떨어져 있던 인간에 대한 그리움이나 사랑 혹은 절실하게 바라는 '잠시 동안의 대화면 된다.'라는 명제가 분명해야 가능하겠지만.

그리고 그렇게 발현된 명제는 이내 목적(?)을 해소하고 나면 다시 찾는다. 최소한의 공간에 대한 안정감과 여유를.

인간의 뇌와 생김새가 그리 설계된 걸 어찌하겠나. 같이 사는 공간에서 조차 이 원초적 거리감을 원하면서도, 한 편엔 외로움과의 전쟁을 치르는 게 인간이니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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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엔 여러 장소가 있다. 그리고 집에는 가족이 산다. 가족은 각자 해야 할 기본적인 생활이 있다. 그리고 개개인에게 주어진 필수적인 일도 있다. 경제생활을 해야 하는 업무의 공간도, 그 기반이 되는 지식과 지혜를 습득하기 위한 공부의 공간도. 그리고 먹고, 자고, 싸는 공간도. 그 안에서 모두가 평안해야 한다. 평안하기 위해 다양한 대화를 나누고, 서로 격려하며, 묻고 또 응답한다. 그것이 집의 조건이자 가족의 의미이리라.


'남녀'에서 '부부'로 관계가 더 확장하기 시작할 때부터인 듯하다. 가족에서 더 진정한 책임감을 갖는 기회는 분명 구성원이 늘기 시작할 때부터다. 나 역시 그랬다. 딸아이가 생기고 안방에서 작업방으로. 집으로 일을 들고 귀가하는 일 잘 못하는 아빠이기도 했지만, '작업방'은 IT를 주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필요로 하는 공간이다.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많다. 그 심중한(?) 의미는 이 매거진의 다른 편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딸아이가 커서 자기 나름대로의 공간을 필요로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또 많은 변화가 일었다. 작업방에서 다시 거실로.


세 가족. 우리는 각자의 창(윈도)을 들기 시작했다. 거실엔 매우 큰 TV 가 자리 잡았고. 딸아이가 커 가면서 손에 작은 것에서 큰 것까지 들기 시작했다. 폰이 그렇고 패드류가 그렇다. 딸아이에게 하는 공부도 딸아이에게 주어진 일이라면 일이다. 아내에게도 가족을 케어하는 '가사'라는 일이 주어져 있다. 펜데믹으로 인해 '원치 않는 재택'에서, 호전적 변화를 경험해 농도 짙은 필요의 재택까지. 아빠에게도 일의 공간과 의미가 바뀌어가고 있다.


결국 문명의 이기, 환경의 변화 그리고 각자의 역할이나 주어진 의무는 우리를 그렇게, 책임감 있게 각자의 방으로 몰아냈다. 결국, 집에서 거실의 의미는 상실해 가고 있었다. 서로 의도하지 않은 채 그렇게 무심해져 갔다. 비단 이런 현상은 우리 집 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대부분 그러했다.

어느 시점에서부턴가 이건 뭔가 문제다라고 생각했다.


이 집으로 이사하면서 이 현상을 바꿔보고 싶었다. 가장 먼저 고려한 것이 붙박이다. 보통 붙박이 하면 옷장이나 이불장을 생각한다. 나는 아내와 상의해서 붙박이 형식의 책장을 만들기로 했다. 때마침 회사 동료 중 손재주가 좋은 친구가 가구 디자이너로 전직을 했고, 붙박이 책장이라는 수제 가구를 대표 프러덕으로 디자인하고 있었다. 이 친구에게 의뢰하여 이동 불가능한 거실의 긴 책장을 만들었다. 책장 한 단 한 단 매우 튼튼한 나무를 올리고, 다양한 장르에 따라 책을 비치할 수 있는 구조로 축을 세웠다. 분해하여 다시 한 층 단위로 쌓아 올리지 않으면 이동이 불가능한, 말 그대로 붙박이 책장이었다.


붙박이 책장을 작은 작업방에도 하나 더 만들었다. 책이 많아서라기보다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고 이게 삶에 매우 중요하다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딸아이 방의 책장마저도 붙박이 형태로 고정시켰다. 책상이 바뀌더라도 책은 가까이하는 습관을 길러주고 싶었다. 책 읽고 쓰는 집의 딸답게 언어유희를 즐기는 편이고, 그래서 음악을 공부하면서도 가사를 더 진중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내 의지대로 되는 건 아니었다. 딸아이의 습관과 내가 바라는 수준엔 분명한 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IMG_7506.jpg 새로운 딸. 보리도 우리의 책장을 좋아해 주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책은 나름대로 의미를 갖지만, 우리 집 거실 책장은 그 의미를 상실하고 있었다.

딸아이가 어느 정도 책을 들기 시작할 무렵부터 딸아이 책과 우리 부부의 책을 함께 비치하여 공유의 공간으로 탈바꿈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딸아이는 딸아이의 방에서, 우리 부부는 각자의 공간에서 책을 들고 있었다. 그저 그것 만이라도 고마운 현상이었으려나? 하지만 뭔가 허전했다.

딸아이가 무슨 책을 읽는지 더 잘 아는 건 역시나 아빠라서라거나 엄마라서가 아니라 조금 더 '관심'을 가지는 이의 몫일뿐이었다. 그리고 최대의 적은 역시나 대체 미디어였다. 대표주자는 거실의 거대한 TV라는 창이었다. 이 창을 부수는 건 예상보다 꽤 어려웠다. 많은 이들의 컨센서스의 출발점이기도 했고, 공론화의 장이기도 했으며, 다양한 유무선 플랫폼 사이의 출연진이 공중파라는 공간으로 밋업하면서 리텐션이라는 생명력을 연명해 나갔다. 절대 TV의 목숨은 끊어지지 않을 듯했다. 내가 움직이지 않는 한. 우리 가족 구성원의 모두가 동의하지 않는 한.


하여 이번에 가장 먼저 선택한 방법은 TV를 없앨 순 없으니 좀 더 먼 거리감을 갖기로 했다. 이 거리감이 멀어질수록 사람과 사람, 책과 사람, 부부, 자녀와 부모 간의 거리가 좀 더 가까워진다 믿었다. 해서 결행하기로 했다.

이 집을 사서 이사할 때부터 목적했지만 지금까지 못한 것. 이번 결행의 트리거가 TV라는 윈도에서 우연히 조우한 '다큐멘터리'라는 것은 아이러니다. 결별을 시작하기 위한 마지막 선물이라 여기고 변화를 시작한다. 우리 부부의 선 합의가 있었고, 나는 이 합의를 근거로 빠르게 결행하기 위해 우선 딸아이를 설득했다. 그리고 딸아이는 고맙게도 문 닫힌 방 안에서 외로이 공부하는 시간보다, 소통과 조금 더 온화한 조명이 있는 거실에 동의해 주었다. 목적이 명확한 변화를 설명하고 함께 동의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변화의 시작은 거실부터


우리는 가장 먼저 TV라는 오랜 역사의 미디어 윈도를 우리가 모이는 공간으로부터 멀리하기로 결정했다. 완전히 없애는 것은 너무 극적 변화라 결행하기에 어렵다. 게다가 큰 비용을 들여 더 큰 놈을 들인 게 재작년 말이니.


거실 정 중앙을 떡허니 자리 잡은 큰 소파도 문제였다. 길이가 무려 4인용에 달한다. 무엇보다 그 위치가 문제다. 책과 등지게 만들었던 것. 책을 읽고 TV를 보기 위한 것이 아닌, TV를 보며 눕는 소파로 용도변화는 남루한 수준. 눕지 않는 소파라는 미명아래 매우 딱딱한 타입을 들였음에도 불구, 내 허리와 등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창을 바라보던 독서대 겸 가정 공용 노트북/프린터 비치용 책상은 그나마 선방. 하지만 그 용도 대비 활용성은 높지 않았다. 그마저도 책이 있는 책장과 멀리 있으니 언밸런스 그 자체.


거실을 더 거실답게. 가족 모두에게 유의미한 공간으로. 함께 소통하고 서로 케어하는 공간으로.


이 목적에 맞게 변화를 시작한다. 오늘 이 글을 시작으로 네 편에 걸쳐 우리 집의 변화와 그 후 생활의 변화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재미없을 법한 주제의 글이지만 전통적 가정, 집의 의미에서 좀 더 시대 변화에 적응해 가려는 한 가정의 작고 소중한 시도로 읽어 주시길 바랄 뿐. 전통적 미디어 채널을 표방하나 다양한 플랫폼의 컨텐트와 크리에이터까지 포용하며 우리들의 남은 시간마저 앗아가고 있는 현실에 조금이라도 저항하고자, 글을 읽고 쓰는 시간을 늘려가고자. 더 이상 TV앞 용도 변화된 소파 옆 이케아 산 의자의 안락함에 도취되지 않기 위해. 그 변화를 시작했다.



to be continue in #2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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