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일기 #393 청계산
영하 11도.
약속이 취소되었지만, 아내도 쉬라고 말렸지만 일부러 나섰다. 이틀 전 과음으로 쌓인 몸의 노폐물을 밀어내고 싶었다. 대신 천천히 걷고 싶었다. 하지만 청계산 종주훈련 C코스의 들산인 원터골엔 사람이 많다. 언제나. 서울 강남에 인접해 있고, 판교 근처라 경기 남부와 성남에서도 많이들 찾는다.
1200여 개 계단을 오르고 나면 매봉. 오늘은 하늘에 구름도 없고 청명하다. 당연하다. 춥고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이니. 베이스 레이어, 등산셔츠, 융자켓과 윈드브레이커 소재의 얇은 레이어드 등산복 차림으로 계속 걷는다.
아이젠을 가져오셨으면서도 혹시나 하여 착용하지 않으셨다는 분을 미끄러지지 않게 도와드리면서 말씀드렸다.
'어머니. 여긴 미끄러운 계단이 계속되니까요. 석기봉 가면 더 심해지니까요. 지금이라도 바로 아이젠 착용 하셔야 해요. 넘어지시면 큰일 나요.'
산에서 연세 있으신 분들을 만나면 어머니 생각이 난다. 해서 그냥 어머니라고 말씀드린다. 칠순도 넘으신 분들이 매봉에서 이수봉까지 이어지는 종주로를 쉬이 걸어가신다. 산은 그렇게 모두에게 이르길 허락한다.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국사봉까지의 능선엔 하얀 눈이 덮여 아름답기 그지없다. 내가 좋아하는 이수에서 국사 능선은 진달래 피는 봄이 더 좋지만 한 겨울의 눈 쌓인 모습도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만나는 사람도. 나도. 눈도. 소나무도. 모두가 좋은 시간.
해가 온전히 내리쬐는 국사봉에서 하오고개로의 하산길은 마른 흙이다. 내려오기 전 착용했던 아이젠을 벗어 놓고 나니 걷기에 훨씬 수월하다.
그렇게 또 한 달만의 청계산은 내게 더 맑은 마음과 건강을 지키라 해준다. 언제나 청계산은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