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일기 #400
오늘로 사백 번째 등산일기를 남긴다.
백 번씩 채울 때마다 특별한 일기를 남긴 것은 아니지만, 오늘 사백 번째 등산은 내겐 매우 유의미했단다.
어쩌면 친구 같은 녀석을 바랐던 거겠지. 항상. 하지만 쉽지 않은 바람이었어. 스트레스가 쌓이면, 오히려 아빠가 너그럽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으니 미안한 마음만 가득해. 오늘 사백 번째 등산엔 네가 같이 걸었으니 그 사실 만으로도 큰 기쁨이었다고. 너무나 행복한 하루의 시작이었지.
실로 오랜만의 동행. 친구들과 가까워지고, 너도 나이가 들면서 할 일이 많아졌지. 자연스럽게 등산보다는 네 생활 주변에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었지. 당연하거라 생각해. 간간이 등산을 가자며 너를 설득해 봤지만 일 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했을까. 오늘은 선뜻 네가 직접 나서서 아빠와 함께 하겠다니 어찌나 기특하고 고마운지.
9년 전. 네가 발랄한 어린이였을 때 이렇게 같이 등산하면서 장난도 치고, 아빠를 앞서 오르기도 했었지. 놀랍기도 했고 즐거운 시간이었지.
한 여름 어느 날도 갑자기 나서며 같이 해주었지. 아빠는 뒤따르면서도 그저 너의 뒷모습이 그렇게 이쁠 수가 없었다고. 아빠에겐 무척 행복한 동행이라고나 할까?
사춘기 시절을 보내고 있는 네게 팬데믹은 더 큰 불편함을 주었겠지. 등교보다는 원격 학습을 하면서 친구들과의 만남은 줄었고, 그저 온라인 카톡으로 오가는 메시지에서 간접적 소통이란 걸 하고 있으니 얼마나 불편하겠어. 심각하게는 마스크를 쓰는 것 자체가 이제는 표정을 드러내지 않아서 좋다는 친구들도 있을 테지. 실로 팬데믹은 너와 나의 삶에 많은 아픔을 남긴 거네.
한 반에 서른 명 수준의 규모라 했지. 아빠가 학교 다닐 때 대비 반으로 줄어들어버렸네. 이런 소규모 관계가 어쩌면 팬데믹과 함께 겪게 된 너희 들의 우정의 깊이에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어. 친구들이 별로 없고, 학원가는 시간이 학교 가는 시간보다 많으며,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주말엔 엄마의 허락을 받아 놀러를 가야 하는 시절이 너에겐 어찌 보면 가혹하다고도 생각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산로 두 번째 고각에서 아빠 손을 꼭 잡으며 걷는 너에게, 오늘도 아빠는 조금이나마 함께 웃는 동행자이길 원해.
그래서 더욱 행복한 시간이었고 지금까지의 등산 중 가장 좋았던 날이라 자랑하고 싶어. 일기에 남겨.
아빠! 아빠는 신생아 같아
아빠는 참 부지런한 것 같다며, 아빠가 열심히 살아온 모습이 멋지다며, 방학 동안 유동적이지 않은 컨디션을 좀 더 다잡기 위해 이젠 좀 더 자주 아빠와 함께 하겠다는 너의 말들이 오늘의 등산로를 수놓았지. 아빤 그렇게 너에게 위로받았어. 고맙고 사랑해. 우리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