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전부야
어린 시절 자주 들락거리던 곳은 여지없이 동네 문구점이었다.
학교 준비물을 사거나 친구에게 보낼 카드나 편지지를 고르기 위해,
또 한 때 열심히 모았던 지우개를 사기 위해 동네 문구점은 내게 질리지 않는 장소였다.
요즘은 그런 소박한 문구점 풍경을 찾아 보기 어렵다.
문구점이라는 제목에 이끌렸던 건지도 모르겠다. 처음 이 책에 손이 간 것은..
책이 출간된 건 2017년이고, 그즈음 폭 빠져 읽고는 최근에 또 읽게 되었다.
재독을 하고 싶었던 건 북실북실 포근한 털실 같은 그때의 느낌 때문일 것이다.
당시 책을 읽고 뭔가 내 마음에 씨앗 하나가 심겨졌던 것 같다.
포포(주인공)가 의뢰인(대필 의뢰인)들을 대하는 마음의 태도, 그 마음이 내주는 정성된 표현들,
모든 게 좋았다. 그 진심의 태도가.
누군가를 위해 정성껏 차를 우리고, 말을 고르고, 그것이 글이 되어 전달되는 과정이 때로는 뭉클하고, 내 마음마저 순해지는 것 같아 글을 읽는 내내 맑은 바람이 이는 것 같았다.
가마쿠라의 한적한 동네, 동백나무(츠바키) 뒤쪽의 작은 문구점에서 대필업을 이어가는 하토코(포포)의 일상은 내가 살고 싶은 풍경의 모습을 닮아 있다. 누군가의 해진 마음을 봉하고, 상처가 아물 때까지 지켜봐 주고, 사라진 퍼즐 조각을 함께 찾아보는 것. 포포의 일은 연결하는 일이다. 닿지 않는 곳을 닿게 도와주고, 떨어져 나간 부분을 이어주는 일 말이다. 아프지 않게 살포시 연고를 바르고 기다려 주는 일.
그 일을 참 정성스럽게 한다.
茶를 고를 때도, 종이와 펜을 고를 때도, 과정 어느 하나 대충이 없고 신중하고도 즐거운 마음이다.
교반차, 번차, 옥로, 홍차 등 좋아하는 차가 등장할 때면 나도 모르게 얼굴 가득 미소 지어지고, 잠시 책을 내려놓고 물을 끓이고 차를 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 소설이 내게 주는 특별한 즐거움 이기도 하지.
작가 오가와 이토의 글은 치유의 글이다. 그녀 스스로에게 거는 마법의 주문처럼 '반짝반짝'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불우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포포와 선대의 관계(츠바키 문구점 이야기)가 마치 실제 자신과 그녀의 어머니와의 관계로 오버랩되어 읽히기도 했다. 어린 시절 엄마의 폭력에 괴로웠고, 그때의 공포가 몸과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다고, 엄마에게 쫓기는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다는 그녀의 글(그녀의 에세이)은 이 아름답고 맑은 소설이 그냥 그렇게 단순하게 다가오지만은 않는다. 집안에 반짝이는 이야기가 없어 본인이 직접 그런 이야기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는 고백은 코끝이 찡할 정도로 아린 마음으로 물든다.
저자가 내게 조금은 달리 보인 이유다.
그녀의 첫 소설 '달팽이 식당'에서도 주인공과 엄마의 사이는 좋지 않다. 하지만 그 안에서 그녀가 얼마나 엄마를 그리워하는지, 얼마나 사랑하고 싶어 하는지가 느껴져 난 가슴이 아프더라.
도쿄에서 한 시간 남짓 거리의 가마쿠라. 그곳에 가면 츠바키 문구점이 있을 것 같고, 포포는 또 누군가를 위해 차를 우리고 종이를 고르고 있지 않을까?
저 대필 의뢰하고 싶은 사연이 있는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