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현자의 음성
몇 해 전 절판된 이 책을 구하기 위해 중고서적을 찾아 헤맨 적이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대출도 가능하지 않아 결국은 구할 길이 없어 포기했었지요.
그 사연을 알고 있던 지인이 얼마 전 이 책의 재출간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실은 지금 책을 읽을 여유가 없지만(대학원 종합시험이 코앞이라) 이럴 때일수록 더 딴짓을 할 이유는 많이 생기죠.
칠레 출신의 작가이자 외교관인 미구엘 세라노가 헤세와 융을 만나고 나눈 대화와 편지를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헤세는 융에게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하였지요. 헤세의 소설을 읽다 보면 융의 이론과 사상 등이 많이 녹아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융의 영향을 받아서라기보다는 비슷한 수준의 영혼들의 만남이기에 그런 영향을 서로 주고받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두 거장의 음성을 마치 옆에서 듣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숱하게 읽었던 헤세의 소설 속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나고,
융이 말한 무의식과 [자기 Self]의 의미가 어렴풋이 이해되기도 합니다.
예전 융의 자서전을 읽다가 끝내지를 못했었는데, 실은 겁이 나서였습니다.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치료사라고 하기엔 뭔가 심령가스러운 일화들이 책을 읽는 내내 제 마음을 어지럽혔기 때문이지요. 솔직히 말하자면 좀 무서웠습니다.
융이 전하는 메시지는 상징적이고 꽤 심오합니다.
의식과 무의식, ego와 Self, 아니마와 아니무스, 자웅동체의 의미에 대하여...
'말'로의 설명은 잘못 이해될 수 있다는 위험과
'말'이라는 것의 가벼운 속성으로 인한 의미 전달의 방해가 염려스럽기도 합니다.
'말'이란 '가면'이라고 했던 헤세의 표현처럼 말이지요.
현자들일수록 '말'이 적어집니다.
해야만 하는 것은 단 한 가지, 조용히 있는 것이라고 했던 크리슈나무르티의 말처럼 이요.
삶에서 알아야 하는 것들에 어느 정도 다가간 것일까요?
과연 '무의식'의 세계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집단무의식과 환생, 원형, [자기]
어렴풋하던 생각들에 각주를 달듯 명료한 생각의 날개를 달아준 책이었습니다.
책을 읽고는 잠시 산책이 필요했습니다.
나뭇가지 사이 푸른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저 너머를 궁금해할 이유를 내 안에서 찾을 수 있음을 알려준 시간이었습니다.